아방가르드 선구자 김구림 씨 "전위예술 50년실험…난 영원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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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블럭서 개인전
“시대를 앞서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외로운 일이에요. 예술가에게는 특히 더 그렇죠. 다음 세대가 오늘의 작업을 이해하고 가치를 인정하리라고 믿더라도, 동시대의 냉담한 반응은 아픈 상처로 남기도 하지요.”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갤러리 화이트블럭(회장 이수문)에서 개관 1주년 기념 전시회를 갖고 있는 김구림 씨(76·사진)는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의 실험정신을 이같이 설명했다.
한국 전위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김씨는 1960~1970년대 비디오 아트, 보디페인팅, 행위예술 등 장르를 넘나들며 창작 활동을 펼쳐왔다. 1980년대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며 백남준과 2인전을 열기도 해 주목받았다. 2000년 귀국, 새 미술 장르에 도전하며 창작열을 불태웠지만 미술계 인사 이외에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해 김달진미술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미술계 전문가들이 김씨를 ‘재조명해야 하는 한국 현대미술가’ 2위로 꼽은 것만 봐도 그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판타즈머고리어(phantasmagoria·환등기)’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1960년대 초기 유화 작업부터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시절의 ‘랜드스케이프(landscape)’ 시리즈, 마네킹 오브제 작업, 1970년대 캔버스 드로잉과 판화, 소품 등 80여점을 출품했다.
1990년대 미국에서 발표한 설치작업을 재현한 작품과 ‘한국 최초의 전위영상작품’으로 꼽히는 1969년작 ‘24분의 1초의 의미’를 비롯한 영상작업도 내보인다.
“제 삶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어요.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펼치며 산다는 것 역시 지난한 작업이었죠. 다만 청년작가처럼 치열하게 삶을 살아와 지금도 예술 의지가 증식되고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할 뿐이죠.”
김씨는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도 들려줬다.
“한창 전시를 준비하던 지난 4월 양주 작업실에 도둑이 들었어요. 작품 20여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죠. 경찰이 화실을 드나드는 지인들의 이름을 요구하는 통에 작품을 되찾는 일이 어렵게 됐어요.”
수사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작품을 포기했다는 얘기다. 그는 “수년간 고생스럽게 작업한 결과물이어서 가슴은 쓰리지만 사람이 있어야 작품도 있는 것이란 생각에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며 “작품이 불태워지지 않고 어디선가 영원히 남아주기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전시공간이 좁아 작품 전부를 보여주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며 “커다란 미술관에서 제 작품 세계를 제대로 펼쳐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시는 12월2일까지 이어진다. (031)992-44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갤러리 화이트블럭(회장 이수문)에서 개관 1주년 기념 전시회를 갖고 있는 김구림 씨(76·사진)는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의 실험정신을 이같이 설명했다.
한국 전위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김씨는 1960~1970년대 비디오 아트, 보디페인팅, 행위예술 등 장르를 넘나들며 창작 활동을 펼쳐왔다. 1980년대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며 백남준과 2인전을 열기도 해 주목받았다. 2000년 귀국, 새 미술 장르에 도전하며 창작열을 불태웠지만 미술계 인사 이외에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해 김달진미술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미술계 전문가들이 김씨를 ‘재조명해야 하는 한국 현대미술가’ 2위로 꼽은 것만 봐도 그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판타즈머고리어(phantasmagoria·환등기)’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1960년대 초기 유화 작업부터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시절의 ‘랜드스케이프(landscape)’ 시리즈, 마네킹 오브제 작업, 1970년대 캔버스 드로잉과 판화, 소품 등 80여점을 출품했다.
1990년대 미국에서 발표한 설치작업을 재현한 작품과 ‘한국 최초의 전위영상작품’으로 꼽히는 1969년작 ‘24분의 1초의 의미’를 비롯한 영상작업도 내보인다.
“제 삶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어요.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펼치며 산다는 것 역시 지난한 작업이었죠. 다만 청년작가처럼 치열하게 삶을 살아와 지금도 예술 의지가 증식되고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할 뿐이죠.”
김씨는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도 들려줬다.
“한창 전시를 준비하던 지난 4월 양주 작업실에 도둑이 들었어요. 작품 20여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죠. 경찰이 화실을 드나드는 지인들의 이름을 요구하는 통에 작품을 되찾는 일이 어렵게 됐어요.”
수사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작품을 포기했다는 얘기다. 그는 “수년간 고생스럽게 작업한 결과물이어서 가슴은 쓰리지만 사람이 있어야 작품도 있는 것이란 생각에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며 “작품이 불태워지지 않고 어디선가 영원히 남아주기만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전시공간이 좁아 작품 전부를 보여주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며 “커다란 미술관에서 제 작품 세계를 제대로 펼쳐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시는 12월2일까지 이어진다. (031)992-44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