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과거에 얽매인 일본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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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석 도쿄 특파원 yagoo@hankyung.com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福田康夫·76)가 최근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젊은이가 일하기 좋도록 후진에게 길을 양보하기 위해서” 차기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일본 언론은 정계의 세대교체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 같은 호평은 오래가지 않았다. 후쿠다 전 총리가 자신의 지역구를 아들인 다쓰오(達夫)에게 물려주려고 한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일하기 좋도록 하겠다’는 얘기는 아들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던 셈이다.
후쿠다가 물꼬를 트자, 비슷한 케이스들이 줄을 이었다. 자민당의 다케베 쓰토무 전 간사장(武部勤), 오노 요시노리 전 방위청 장관(大野功統) 등이 세습 준비를 마쳤다. 한국 같으면 난리가 났겠지만, 일본 언론은 비교적 조용하다. 일본 유권자들이 ‘세습 정치’에 익숙해져 있는 탓이다.
지난달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면면은 일본에 만연된 세습정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총재로 선출된 아베 신조(安倍晉三)를 비롯해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등 5명의 후보가 모두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정치를 시작한 사람들이다.
일본 정계에는 ‘3방’이라는 말이 있다. ‘가방(가방·돈)’, ‘강방(간판·지명도)’, ‘치방(지반·지역 후원회)’의 마지막 발음이 모두 ‘방’으로 끝나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아버지의 지역구를 승계하면 ‘3방’을 모두 가진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게 된다. 일종의 ‘불공정 게임’이다.
세습 정치의 본영인 자민당도 2009년 총선에서는 ‘지역구 대물림’을 금지하기도 했었다. ‘구악’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집권 민주당의 실정으로 자민당 지지율이 올라가고, 당내 원로들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면서 이런 원칙이 무너지는 분위기다.
세습정치의 가장 큰 폐해는 아버지와의 결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정책과 사상이 과거의 틀에 갇힐 우려가 높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아베 총재가 유독 왜곡된 과거사에 집착하는 것도 여기에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아베 총재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늘 ‘외할아버지’를 꼽는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후 A급 전범으로 체포됐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다.
안재석 도쿄 특파원 yagoo@hankyung.com
이 같은 호평은 오래가지 않았다. 후쿠다 전 총리가 자신의 지역구를 아들인 다쓰오(達夫)에게 물려주려고 한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일하기 좋도록 하겠다’는 얘기는 아들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던 셈이다.
후쿠다가 물꼬를 트자, 비슷한 케이스들이 줄을 이었다. 자민당의 다케베 쓰토무 전 간사장(武部勤), 오노 요시노리 전 방위청 장관(大野功統) 등이 세습 준비를 마쳤다. 한국 같으면 난리가 났겠지만, 일본 언론은 비교적 조용하다. 일본 유권자들이 ‘세습 정치’에 익숙해져 있는 탓이다.
지난달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면면은 일본에 만연된 세습정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총재로 선출된 아베 신조(安倍晉三)를 비롯해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등 5명의 후보가 모두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정치를 시작한 사람들이다.
일본 정계에는 ‘3방’이라는 말이 있다. ‘가방(가방·돈)’, ‘강방(간판·지명도)’, ‘치방(지반·지역 후원회)’의 마지막 발음이 모두 ‘방’으로 끝나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아버지의 지역구를 승계하면 ‘3방’을 모두 가진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게 된다. 일종의 ‘불공정 게임’이다.
세습 정치의 본영인 자민당도 2009년 총선에서는 ‘지역구 대물림’을 금지하기도 했었다. ‘구악’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집권 민주당의 실정으로 자민당 지지율이 올라가고, 당내 원로들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면서 이런 원칙이 무너지는 분위기다.
세습정치의 가장 큰 폐해는 아버지와의 결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정책과 사상이 과거의 틀에 갇힐 우려가 높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아베 총재가 유독 왜곡된 과거사에 집착하는 것도 여기에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아베 총재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늘 ‘외할아버지’를 꼽는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후 A급 전범으로 체포됐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다.
안재석 도쿄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