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애플과 삼성의 특허 공방이 한창인 가운데 재미있는 조사 결과 하나가 나왔다. 소비자들이 애플의 아이폰을 고르는 가장 큰 이유로 터치스크린의 감도를 꼽은 것이다. 디자인 특허 때문에 삼성과 애플이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고, 방대한 애플리케이션이 애플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터치스크린에 더 마음을 두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터치스크린이 각종 정보기술(IT) 기기의 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1970년대에 군사용으로 개발돼 카지노, 공장 등에서나 쓰던 터치스크린이 최근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들은 세계 터치스크린 시장이 연평균 28%로 빠르게 성장해 2015년에는 200억달러 규모 시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터치스크린이 단순히 디스플레이 기기의 한 부분이 아니라 주력 품목으로 등장한 셈이다.

한국은 터치스크린 분야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갖고 있을까. LCD(액정표시장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등 디스플레이 전반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하지만, 안타깝게도 터치스크린에서는 유독 경쟁국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 최대 터치스크린 생산국인 대만은 애플과 손잡고 일찌감치 터치스크린 시장에 뛰어들어 현재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있다. 전통적 기술 강국인 미국과 일본도 투명전도성 필름, 강화유리 등 터치스크린 소재 분야에서 뛰어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런 경쟁구도 속에서 우리는 국내 터치스크린 수요품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강점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터치스크린을 필요로 하는 곳은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을 만드는 IT 기업들이고, 우리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터치스크린 수요국이다. 수요가 있으니 핵심 기술을 확보해 만들기만 하면 된다. 물론 우리의 터치스크린 생산 기술은 아직 경쟁국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늦게 시장에 뛰어들었으니 불가피한 면이 있다.

하지만 기회는 있다. 터치스크린 기술이 빨리 변하고 있는 것이다. IT 기기들을 얇고 가볍게 만들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무겁고 두꺼운 소재를 사용하는 기존 터치스크린 기술이 급속히 변하고 있다. 터치스크린 내부 소재를 줄이는 기술이나 새로운 생산 공정이 부상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기업들에는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정부는 이런 기회를 인식하고 작년부터 산하기관인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을 통해 터치스크린 핵심 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투명전도성 필름, 접착제 등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소재들을 국산화하고, 기존 소재를 대체해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신소재 개발도 지원하고 있다.

특히 다양한 종이 위에 쓰는 듯한 질감과 바다 모래와 같은 촉감을 느낄 수 있는 감성터치 분야가 떠오르고 있다. PC, TV 등 중대형 터치스크린 시장이 조만간 열릴 전망이라는 점도 우리에게는 기회다. 감성터치와 중대형 분야에서는 아직 강자가 없는 만큼 우리 기업들이 국내 패널 대기업들과 협력해 신속하게 진입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기회를 현실화하기 위해 정부는 터치스크린 핵심 기술 개발과 함께 시험·인증센터 구축, 고급 연구인력 양성, 표준화 등 산업 생태계 구축에 앞장설 것이다. 우리 기업들의 진취적인 시장 확보 노력에 맞춰 정부의 지원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면 3~4년 후에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한국 터치스크린 기업들을 만날 것으로 확신한다.

박일준 <지경부 정보통신산업 정책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