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삼동에 사는 50대 주부 A씨가 B씨(51)에게서 개당 500만원짜리 ‘엉터리 계좌’ 3개를 사들인 것은 지난해 9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인수하면 매월 30%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B씨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A씨는 말로만 듣던 다단계에 걸려 들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투자금 1500만원을 날린 뒤였다. B씨는 “투자유치 성과에 따라 수익금 외에 매달 최대 170만원씩 챙겨 주겠다”고 주부들을 꼬드겨 지난해 1~9월 472회에 걸쳐 62억5900만원의 투자금을 받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 등)로 지난달 19일 구속됐다. 서울 강남지역에서 여윳돈 굴릴 곳을 찾는 주부들을 노리고 심심찮게 발생하는 ‘금융 피라미드’ 사기 사건의 전형이다.

‘대한민국 경제 1번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를 관할하는 강남·서초·송파·수서·방배경찰서에서는 이 같은 경제범죄를 매년 1만7000여건, 하루 평균 50여건 접수하고 있다. 강남 3구 인구(170여만명)가 서울 전체 인구(1000만명)의 17%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그렇다면 강남 3구를 포함해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발생하는 경제범죄 지도는 어떻게 그려질까.

한국경제신문이 서울지방경찰청 산하 31개 경찰서의 ‘2008~2012년(6월 기준) 주요 경제범죄 발생률’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강남 3구는 16개 주요 경제범죄 가운데 10개 죄목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서울에서 같은 기간 발생한 전체 경제범죄 38만4741건 중 강남 3구에서 발생한 건만 8만7195건으로 전체의 22.66%를 차지했다.

강남권 외에 항목별 경제범죄 최다 발생 지역은 영등포구(여신전문금융업법·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중구(외국환거래법·상표법·통화법), 종로구(디자인보호법) 등 3곳뿐이었다.

강남 3구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 경제범죄는 강남경찰서의 경우 △부정경쟁방지영업비밀보호법 위반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저작권법 위반 △대부업법 위반 △횡령 △사기 △유가증권 △알선수재·뇌물, 송파경찰서는 부정수표단속법 위반, 서초경찰서는 배임 등이었다.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부촌인 데다 대기업 및 중소기업 본사가 모여있는 ‘경제 1번지’ 강남 3구의 지역적 특성이 경제범죄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12 한국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거주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부자 6만8000명 가운데 2만6000명(38%)이 강남 3구에 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민·우리·하나·신한·외환 등 5대 시중은행 점포 10곳 중 3곳이 이곳에 몰려 있다.
돈이 몰린 강남 3구에서는 사기꾼들이 기승을 부려왔는데 최근 5년간 발생한 사기 사건 24만252건 가운데 5만2605건이 이곳에서 발생했다. 반면 환전상이 많이 활동하는 중구(남대문·중부경찰서 관할)는 위조지폐가 넘쳐나면서 외국환거래법과 외화 위·변조 같은 통화 사건이, ‘짝퉁 명품’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종로구(혜화경찰서)에서는 디자인보호법 위반 사건이 가장 많았다.

증권가와 외국인 주거지가 몰려 있는 영등포구(영등포경찰서)에서는 ‘대포통장’을 이용한 보이스피싱 관련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했다. 금천구는 정보기술(IT) 기업이 몰리면서 업체 간 저작권법 분쟁이 가장 많았다.

최근 5년 동안 대부업 위반 최다 발생 지역은 강남구(강남경찰서)였다. 작년에는 영세 대부업체들이 몰려간 관악구(관악경찰서)가, 올해에는 6월 기준으로 동대문구(동대문경찰서)가 1위였다.

김선주/박상익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