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의 상속녀 엘리자베스 페이지 로리는 2005년 미 남가주대에 졸업장을 반납했다. 재학 시절 룸메이트에게 2만달러를 주고 리포트와 숙제를 대신하게 했다는 게 들통났던 탓이다. 사실이 알려지자 미주리대도 엘리자베스 부모에게서 2500만달러를 기부받아 건립한 ‘페이지 경기장’의 명칭을 바꿔버렸다. 리포트와 숙제 표절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던 셈이다.

지난 4월엔 슈미트 팔 헝가리 대통령이 논문 표절로 불명예 퇴진을 당했다. 20년 전 발표한 논문이 다른 2명의 논문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헝가리 제멜와이스대가 박사학위를 박탈한 게 빌미가 됐다. 젊은 시절 펜싱 영웅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이란 경력을 바탕으로 국회의장을 거쳐 대통령까지 됐으나 표절로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표절을 가리키는 영어 ‘plagiarism’은 ‘plagiarius’라는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납치범’을 뜻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지적 성과를 무단 사용하는 행위를 남의 ‘정신적 아이’를 납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도 대학생은 물론이고 정치인과 고위 관료 중에도 표절로 망신당한 사람이 허다하다. 맑고 깨끗한 정치를 들고 나온 안철수 대선 후보조차 논문 표절 의혹에 휩싸였을 정도다. 표절이 더 심한 곳은 가요계다. 2010년 이효리의 4집 앨범 가운데 6곡이 외국곡을 베낀 것으로 드러났다. 작곡가는 사기 혐의로 고소돼 징역 1년6개월형을 받았다. 아이돌 그룹 ‘씨엔블루’의 히트곡 ‘외톨이야’, 박진영이 작곡한 아이유의 ‘섬데이’ 역시 표절 파문이 일었다. 이렇다보니 가요계 표절은 일종의 난치병이란 자조 섞인 비판까지 나온다.

가수 싸이를 공연 표절로 고소하겠다고 나섰던 대학원생 고희정 씨가 하루 만에 사과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고씨는 지난 8일 인터넷 카페를 통해 김장훈과 싸이 합동공연 ‘완타치’와 싸이 ‘훨씬THE흠뻑쇼’의 캐릭터 무대 특수효과 등이 95%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9일엔 ‘창작물을 바로잡길 바란 것일 뿐 싸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두루 살피지 못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강남 스타일’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건 기뻐할 일이지만 공연 표절 시비로 ‘절친’ 김장훈과 갈등을 일으킨 건 개운치 않다. 18금이 아니어서인지 부모 손잡고 온 아이들이 많았던 서울광장 공연에서 소주 ‘병나발’을 분 것도 논란거리다. 아무리 기성의 룰을 뒤집는 게 싸이의 특징이라 해도 원칙은 지키는 게 서로 맘이 편하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모처럼 나온 ‘월드 스타’에 흠이 생길까봐 해보는 소리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