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가 해결되더라도 미국의 경제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앞으로 90년 내에 산업혁명 이전 수준으로 뒷걸음질칠 수밖에 없다.”

로버트 고든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제학과 교수(72·사진)가 지난 8월 미국경제연구소(NBER)를 통해 발표한 ‘미국 경제의 성장은 끝났는가’라는 논문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비관적인 전망을 담은 이 논문을 “최근 나온 경제학 논문 중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혁신 통한 성장, 한계에

고든은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1위 경제국’의 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성장의 종말을 예언했다. 1764년 방직기 발명으로 시작된 1차 산업혁명 이후 영국은 국내총생산(GDP) 1위국이었다. 1906년부터 미국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두 나라의 1인당 GDP 증가율이 고든의 분석 대상이다.

고든에 따르면 세계 1위국의 1인당 GDP 증가율은 1760년대 1차 산업혁명을 통해 상승하기 시작, 전기와 자동차 발명으로 대표되는 2차 산업혁명(1870~1900년)을 거치며 1950년대 2.5%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하락했다. 인터넷과 이커머스로 대표되는 3차 산업혁명(1996~2004년) 이후인 2007~2027년에도 연평균 성장률은 1.4%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고든은 “이 같은 추세대로라면 2100년 미국의 1인당 GDP 증가율은 0.2%로 사실상 제로성장을 할 전망”이라며 “산업혁명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한 250년은 인류 역사상 독특한 시기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라는 게 고든의 진단이다. 2차 산업혁명을 통해 이룩한 폭발적인 생산성 향상을 앞으로 재현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차 산업혁명의 결과로 1891년부터 1972년까지 81년간 미국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연평균 2.3%를 기록했다. 이 같은 생산성 향상은 인터넷 발명으로 정보기술(IT) 붐이 형성된 1996년 이후에도 계속됐지만 8년 뒤인 2004년부터 성장률이 낮아졌다.

또 다른 혁신이 나타나더라도 “고속성장기에는 없던 장애물이 나타나 성장률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고든은 주장한다. 그는 노동력 감소와 교육 수준 저하, 환경 등 6가지를 성장 저해 요인으로 꼽았다. 이 같은 요인이 앞으로 1인당 GDP 증가율을 각각 0.2~0.5%포인트까지 떨어뜨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제성장이 사실상 제로 수준까지 떨어지는 국면을 피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비관론 늘어

마틴 울프 FT 칼럼니스트는 지난 3일 고든의 논문을 소개하며 “생활고를 겪고 있는 선진국가 국민들에게 ‘앞으로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을 테니 익숙해지라’는 비관적인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영구적인 저성장’을 피할 수 없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타일러 코웬 조지메이슨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 6월 출간한 《거대한 침체》에서 “기술 혁신이 사라지면서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며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 둔화를 막을 수 없으며 어떤 정책이 나오든 미국은 더 가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IT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올해 3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1991년 이후 20년간 연평균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2배 가까이 과장됐다”며 “제조업 경쟁력 하락에 따른 취업자 수 감소가 생산효율 증가에 따른 결과인 것으로 오도됐다”고 주장했다.

팀 하퍼드 파이낸셜타임스 수석칼럼니스트는 “미국 등 선진국이 경기 회복에 실패하면서 우울한 분석과 전망이 많이 나오고 있다”며 “경제학자들이 단기 전망보다 장기 전망을 더욱 비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