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하나 된 세계한인, 희망찬 대한민국’을 주제로 제5회 ‘세계 한인의 날’ 행사가 열렸다. ‘세계 한인의 날’은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재외동포를 향한 관심과 이해를 고취시키고, 재외동포에게는 한민족 공동체로서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국가가 법으로 정한 기념일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해외로 이민을 보내온 역사가 국내로 이민을 받아들인 시간보다 훨씬 오래된 나라였다. 조국 땅을 떠나야 했던 사연 또한 구구절절해, 사람이 살지 못한다는 시베리아 동토(凍土)를 향해 불안한 발길을 내디뎌야 했던 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강제 징용돼 간 일본 땅에 어쩔 수 없이 뿌리내린 이들도 있었고, 목구멍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웠던 시절 ‘아메리칸 드림’에 희망을 걸고 부모 형제와 이별한 이들도 있었을 게다.

미국 유학 시절 만났던 한국계 미국인 이민 1세대의 공통된 고백인 즉 몸은 떠나왔지만 마음은 늘 고국을 향해 있어, 대한민국이 잘나간다 싶으면 당신들 어깨도 덩달아 으쓱해지고, 대한민국에 변고라도 생기나 싶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마음이 일방적 짝사랑(?)인 것만 같아 때론 서운하다는 마음도 숨기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요즘 해외동포들은 그 어느 때보다 ‘한국인’이란 사실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고 있을 듯하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먼지를 뒤집어쓴 채 창고에 쌓여 있던 메이드 인 한국 제품이 이젠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시장 점유율 1, 2위를 다투는 모습을 볼 때면 얼마나 감격스러울지. ‘겨울연가’ ‘대장금’ ‘사랑이 뭐길래’ 등 한국 드라마가 일본을 넘어 동남아시아를 지나 동유럽에서까지 인기리에 방영된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또 얼마나 뿌듯하겠는지. 현란하고 세련된 댄스에 중독성 높은 리듬으로 무장한 K팝의 물결이 유럽 시장을 강타했다는 소식에 흥분했던 것이 엊그제인데, 이번엔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유튜브 조회 수 3억건을 훌쩍 넘기며 빌보드 차트 1위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데야.

덕분인가, 한국인으로서의 열등감을 극복한 영광의(glorious) 세대 혹은 글로벌(global) 세대가 대세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 스스로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리의 자화상을 보다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한류 열풍에 힘입어 ‘코리안 드림’을 불러일으키는 진앙지가 됐다. 이제 대학 캠퍼스엔 세계 각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활보하고 있고, 거리엔 외국인 이주노동자 및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으며, 결혼이주를 통한 다문화 가정의 숫자 또한 가파르게 늘고 있다. 그럼에도 순혈주의를 이상으로 하는 배타적 인식이 여전히 깊게 뿌리내리고 있어 ‘세계 속의 한국’이란 구호를 무색케 한다.

문화적 이질성에 대한 거리감을 측정하는 간단한 도구로 ‘보가드 스케일’이란 것이 있다. 곧 우리와 인종 언어 문화적 배경이 다른 집단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해도 되는지, 우리네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직장 동료가 돼도 좋은지, 그리고 그들과 결혼할 수 있는지 등을 질문했을 때, 모두 ‘예스’하면 다문화 포용력이 큰 것이요, 모두 ‘노’ 하면 다문화 배타성이 큰 것으로 간주한다.

실제로 백인, 흑인, 동남아시아인 등 다양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보가드 스케일을 측정해보면 대부분의 한국인이 다른 건 몰라도 결혼만큼은 안 된다는 공고한 배타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문화 수용성에 관한 한 명백한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올바른 정체성을 구축하지 못할 경우 겉은 노란데 속은 하얗다는 뜻의 ‘바나나’란 경멸적 호칭을 붙여주는 미국에서의 경험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큼은 물론이다. 다문화 감수성이 유달리 취약한 우리로서는 일찍이 다문화 다인종 다국적 사회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오늘에 이른 해외동포들의 소중한 경험을 타산지석 삼아 의미있는 교훈과 귀중한 지침을 얻어야 할 것이다. 세계 각지의 해외동포들과 긴밀하고도 유기적인 유대를 이어감이야말로 뜻깊은 출발이 될 것이다.

함인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hih@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