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뿔난 유커(遊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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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 2009년 3월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무장관은 이런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티베트의 인권문제를 놓고 대립하던 중국에 백기를 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 내부에서 항복하라는 압력이 거셌다는 사실이다. 한 해 수백만명씩 찾아오던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프랑스 정부에 항의, 발길을 끊어버린 게 문제였다. 면세점 백화점 호텔 식당 등의 비명소리는 커졌고, 프랑스 정부는 결국 꼬리를 내려야 했다.
유커는 세계 관광업계의 ‘지존’이다. 명품을 중심으로 한 소비시장에서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올해 서울의 갤러리아 명품관을 찾은 유커의 1인당 평균 구매 단가는 300만원을 넘는다. 일본인 관광객(200만원)을 훨씬 넘어 섰고, 국내 소비자들의 평균 구매단가(60만원)의 다섯 배에 달한다. 유커 중 부유층의 소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수천만원을 주고 시계 핸드백 가죽의류 같은 고가의 명품을 가방에 가득 채워가는 것은 예사다. 중국의 높은 세금 때문에 해외에서 사는 게 싸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졸부적 허영심도 한몫한다. 유커의 수는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세계여행기구는 올해 유커를 7800만명으로 추정했다. 7년 전인 2005년엔 3000만명에 못 미쳤다. 2015년엔 1억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국은 유커를 유치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영국의 고급 쇼핑몰인 셀프 리지스는 유커 전용 계산대를 설치해 호평을 받고 있다. 프랑스의 쇼핑센터인 라파예트는 중국어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일본은 90일 체류가 가능한 무제한 복수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비자발급 때 인터뷰를 면제하고 있다. 한국의 관광산업도 유커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 명동이나 신촌 등의 매장에선 점원의 중국말이 낯설지 않다. 특히 센카쿠열도 문제로 일본과 갈등이 심해지면서 여행지를 한국으로 바꾼 유커가 크게 늘었다. 중국 국경절(10월1일) 연휴기간인 요즘 중국인이 선호하는 제주도는 ‘유커 천지’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유커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쇼핑거리에 풀어놓거나 변두리의 홍삼판매점에 데려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차를 즐기는 중국사람에게 한국차를 소개하거나 경극 대신 마당극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별로 없다. 찬 음식을 잘 안 먹는 중국인에게 김치와 깍두기를 끼니마다 내놓기도 한다. 반찬이란 개념이 없는 중국에선 식탁에 오르는 건 모두 요리이고 보면 입맛에 안 맞는 음식을 제공하는 셈이다. 엊그제는 호텔이 아닌 사우나에 짐을 풀라고 했다가 화가 난 유커의 항의를 받았다는 소식이다. 이유야 어떻든 뿔난 유커에 혼쭐이 났던 프랑스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생긴다.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
유커는 세계 관광업계의 ‘지존’이다. 명품을 중심으로 한 소비시장에서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올해 서울의 갤러리아 명품관을 찾은 유커의 1인당 평균 구매 단가는 300만원을 넘는다. 일본인 관광객(200만원)을 훨씬 넘어 섰고, 국내 소비자들의 평균 구매단가(60만원)의 다섯 배에 달한다. 유커 중 부유층의 소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수천만원을 주고 시계 핸드백 가죽의류 같은 고가의 명품을 가방에 가득 채워가는 것은 예사다. 중국의 높은 세금 때문에 해외에서 사는 게 싸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졸부적 허영심도 한몫한다. 유커의 수는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세계여행기구는 올해 유커를 7800만명으로 추정했다. 7년 전인 2005년엔 3000만명에 못 미쳤다. 2015년엔 1억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국은 유커를 유치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영국의 고급 쇼핑몰인 셀프 리지스는 유커 전용 계산대를 설치해 호평을 받고 있다. 프랑스의 쇼핑센터인 라파예트는 중국어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일본은 90일 체류가 가능한 무제한 복수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비자발급 때 인터뷰를 면제하고 있다. 한국의 관광산업도 유커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 명동이나 신촌 등의 매장에선 점원의 중국말이 낯설지 않다. 특히 센카쿠열도 문제로 일본과 갈등이 심해지면서 여행지를 한국으로 바꾼 유커가 크게 늘었다. 중국 국경절(10월1일) 연휴기간인 요즘 중국인이 선호하는 제주도는 ‘유커 천지’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유커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쇼핑거리에 풀어놓거나 변두리의 홍삼판매점에 데려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차를 즐기는 중국사람에게 한국차를 소개하거나 경극 대신 마당극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별로 없다. 찬 음식을 잘 안 먹는 중국인에게 김치와 깍두기를 끼니마다 내놓기도 한다. 반찬이란 개념이 없는 중국에선 식탁에 오르는 건 모두 요리이고 보면 입맛에 안 맞는 음식을 제공하는 셈이다. 엊그제는 호텔이 아닌 사우나에 짐을 풀라고 했다가 화가 난 유커의 항의를 받았다는 소식이다. 이유야 어떻든 뿔난 유커에 혼쭐이 났던 프랑스 신세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생긴다.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