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돈이 겁쟁이라는 사실을 아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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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앞두고 기업투자 급격한 감소
기업 때리기 경쟁에 투자의욕 실종
잠재성장력 높일 투자 불씨 살릴때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기업 때리기 경쟁에 투자의욕 실종
잠재성장력 높일 투자 불씨 살릴때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선거는 언제나 경제에 부정적이었다. 적어도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선거는 그랬다. 선거판에 풀린 돈이 수요 확장효과를 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효과가 경기를 움직이기에는 이미 우리 경제 규모는 커질 대로 커졌다. 오히려 선거 때마다 기업들이 불확실성을 이유로 설비투자를 줄인 것이 늘 경제의 발목을 잡아왔다. 1987년 이후 대선이 있었던 다섯 해의 연간 설비투자 증가율이 전체 평균보다 3.7%포인트 낮았다는 게 학계의 분석 결과다. 대선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메가톤급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벌써 상황이 심상치 않다. 올 들어 설비투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국내외 경제가 침체일로를 겪고 있어 투자 부진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올해의 부진은 대선이 있었던 과거 어느 해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 전반적인 분석이다. 지난 8월의 설비투자 감소 폭은 10년 내 가장 큰 폭이었다.
불황이 닥치면 투자로 맞서며 미래를 대비해온 것이 국내 기업들이다. 기업들이 국내외 경기만을 이유로 투자를 줄였다고 볼 수는 없다는 얘기다. 투자 재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작년에 비해 현금 보유가 다소 줄었지만 기업의 곳간은 여전히 든든하다. 게다가 설비투자의 큰 손인 10대 상장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지난 상반기에 오히려 4.9%나 불어났다. 물론 한계선상에 몰린 기업들이 늘고 있고, 가계부채 위기나 주택가격 하락과 같은 투자에 부정적인 요소가 적지 않다. 하지만 기업들은 투자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설문조사 결과가 그렇다.
기업정책은 대선 경쟁에서 중요한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특히 재벌을 놓고 여야 후보가 벌이는 열띤 논쟁은 언제나 유권자들의 표심을 좌우할 수 있는 변수가 돼 왔다. 기업인들이 5년 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것도 따지고 보면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에 건 기대가 그만큼 컸다는 증거일 것이다. 사실 규제와 세금을 줄여 경제 주체들이 경쟁 속에 창의적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약속에 박수치지 않을 기업인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기업인들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MB노믹스는 규제 전봇대를 하나 뽑아냈을 뿐, 촛불시위 한 방에 허공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공정사회·공생발전이라는 새로운 국정목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부자와 서민을 1 대 99의 논리로 가르면서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기업형슈퍼마켓(SSM) 규제,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납품가 인하 제한, 보금자리 주택, 전세가 상한제, 등록금 상한제와 같은 반시장 정책이 난무한 5년이었다. 정부가 설탕을 직접 수입하고, 알뜰주유소를 세워 물가를 잡겠다는 우스꽝스러운 발상까지 현실화하면서 기업들의 사기는 꺾일 대로 꺾인 상황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웠던 정부가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면 이번 대선은 어떨까. 누가 정권을 잡건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 기업인들의 생각이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사람의 기업 정책 자체에서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다. 경제민주화라는 포장마저 같으니 말이다. 기업을 뛰게 만들어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공약은 없다. 그저 서민과 중소기업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대기업을 때리고 압박하겠다는 것이 각 캠프가 내세운 기업 정책이다. 압박의 강도만 다를 뿐이다. 적어도 기업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순환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징벌적 손해배상제, 경제사범 처벌강화, 일감 몰아주기 금지…. 어쨌든 기업들이 뛰어다녀야 할 운동장은 손바닥 크기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애기다.
경제성장률이 2%대에 머물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잠재성장률마저 심리적 마지노선이라는 4% 밑으로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상태에서 본격적인 고령사회로 접어든다면 우리 경제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 신용등급 상향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늦기 전에 투자의 불씨를 살려야 할 때다. 돈은 겁쟁이라고 했다. 분위기가 좋아도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는 게 돈이다. 이 겁쟁이가 밖으로 나와 마음껏 투자의 현장을 뛰어다닐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정치권이 할 일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문제는 이런 추세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벌써 상황이 심상치 않다. 올 들어 설비투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국내외 경제가 침체일로를 겪고 있어 투자 부진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올해의 부진은 대선이 있었던 과거 어느 해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 전반적인 분석이다. 지난 8월의 설비투자 감소 폭은 10년 내 가장 큰 폭이었다.
불황이 닥치면 투자로 맞서며 미래를 대비해온 것이 국내 기업들이다. 기업들이 국내외 경기만을 이유로 투자를 줄였다고 볼 수는 없다는 얘기다. 투자 재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작년에 비해 현금 보유가 다소 줄었지만 기업의 곳간은 여전히 든든하다. 게다가 설비투자의 큰 손인 10대 상장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지난 상반기에 오히려 4.9%나 불어났다. 물론 한계선상에 몰린 기업들이 늘고 있고, 가계부채 위기나 주택가격 하락과 같은 투자에 부정적인 요소가 적지 않다. 하지만 기업들은 투자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설문조사 결과가 그렇다.
기업정책은 대선 경쟁에서 중요한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특히 재벌을 놓고 여야 후보가 벌이는 열띤 논쟁은 언제나 유권자들의 표심을 좌우할 수 있는 변수가 돼 왔다. 기업인들이 5년 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것도 따지고 보면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에 건 기대가 그만큼 컸다는 증거일 것이다. 사실 규제와 세금을 줄여 경제 주체들이 경쟁 속에 창의적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약속에 박수치지 않을 기업인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기업인들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MB노믹스는 규제 전봇대를 하나 뽑아냈을 뿐, 촛불시위 한 방에 허공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공정사회·공생발전이라는 새로운 국정목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부자와 서민을 1 대 99의 논리로 가르면서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기업형슈퍼마켓(SSM) 규제,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납품가 인하 제한, 보금자리 주택, 전세가 상한제, 등록금 상한제와 같은 반시장 정책이 난무한 5년이었다. 정부가 설탕을 직접 수입하고, 알뜰주유소를 세워 물가를 잡겠다는 우스꽝스러운 발상까지 현실화하면서 기업들의 사기는 꺾일 대로 꺾인 상황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웠던 정부가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면 이번 대선은 어떨까. 누가 정권을 잡건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 기업인들의 생각이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사람의 기업 정책 자체에서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다. 경제민주화라는 포장마저 같으니 말이다. 기업을 뛰게 만들어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공약은 없다. 그저 서민과 중소기업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대기업을 때리고 압박하겠다는 것이 각 캠프가 내세운 기업 정책이다. 압박의 강도만 다를 뿐이다. 적어도 기업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순환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징벌적 손해배상제, 경제사범 처벌강화, 일감 몰아주기 금지…. 어쨌든 기업들이 뛰어다녀야 할 운동장은 손바닥 크기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애기다.
경제성장률이 2%대에 머물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잠재성장률마저 심리적 마지노선이라는 4% 밑으로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상태에서 본격적인 고령사회로 접어든다면 우리 경제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 신용등급 상향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늦기 전에 투자의 불씨를 살려야 할 때다. 돈은 겁쟁이라고 했다. 분위기가 좋아도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는 게 돈이다. 이 겁쟁이가 밖으로 나와 마음껏 투자의 현장을 뛰어다닐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정치권이 할 일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