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는 요즘 축제 분위기에 흠뻑 빠져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고통받고 있는 미국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거리의 상점들은 손님으로 북적거렸고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친절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전문기업 오라클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부터 4일까지 ‘오픈월드’ 행사를 여는 샌프란시스코는 거대한 기업도시로 바뀌어 있었다. 행사가 열리는 모스콘 컨벤션센터 앞 하워드 거리는 ‘오라클’이 새겨진 빨간색 현수막과 깃발이 나부꼈다.

오라클은 이 행사를 1997년부터 개최하기 시작했다. 매년 10월 초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다. 회사 임직원과 거래처 인사들을 초청해 오라클의 향후 전략을 발표하고 신제품을 소개하는 어찌보면 매우 단순한 행사다.

하지만 오라클과 지방자치단체인 샌프란시스코시는 이 행사를 도시 축제로 바꾸어 놓았다. 오라클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임직원과 거래처 관계자 등 5만여명을 초청하고, 샌프란시스코시는 이들이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시 교통당국(SFMTA)은 행사가 열리기 3일 전부터 행사장을 둘러싼 하워드와 테일러 거리의 교통을 아예 차단했다. 시내버스와 자동차가 다니던 거리는 행사 텐트와 야외 테이블로 꽉 찼다. 교통당국은 이 길을 다니던 12개 시내버스 노선을 바꿨다. 대신 오라클이 배치한 300여대의 셔틀버스가 주변을 돌아다녔다. 경찰들이 나와 주변 곳곳의 교통을 정리했고 안전을 지켰다. 한국에서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오라클은 오픈월드 참석자와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을 위해 록밴드 펄잼, 팝스타 메이시 그레이 등 유명 가수들을 초청한 ‘오라클 뮤직 페스티벌’도 마련했다. 트위터에는 “오늘 메이시 그레이 공연 절대로 놓치지 마세요.”(@conneeoneill), “오라클 뮤직 페스티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Radu43) 등 네티즌의 반응이 뜨거웠다.

오라클 행사로 샌프란시스코 시내 곳곳이 막혔지만 시민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제레미 캠벨 씨는 ‘불편하지 않냐’고 묻자 “교통이 막히니까 불편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즐기고 돌아다니니까 도시에 생기가 돌고 사람들이 돈도 많이 벌고 있지 않느냐”고 기자에게 오히려 되물었다.

오라클에 따르면 이번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예약한 호텔 숙박일수는 모두 합쳐 9만8000여일에 달했다. 행사장에 인접한 유니언스퀘어 근처 호텔은 물론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과 이스트 베이, 페닌슐라 지역에 있는 호텔에서도 방을 구하기 어려웠다.


샌프란시스코市, 1억2000만弗 '잭팟'

직접 확인해 보니 행사장 주변에서는 힐튼, 메리어트, 인터컨티넨탈 같은 고급 호텔은 물론 실속형으로 인기가 높은 슈퍼8 호텔에도 방이 없었다. 비즈니스 호텔인 ‘니코’ 역시 예약을 받지 않았다. 유원식 한국오라클 사장도 행사장 근처에 숙소를 구하지 못해 샌프란시스코 공항과 가까운 하얏트호텔에 묵어야 했다.

유니언스퀘어 근처 피자가게에서 일하는 이토 씨는 “손님이 20%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메이시 백화점 여성의류코너의 레슬리 마키시마 매니저는 “오라클 배지를 보여주는 고객에게 할인 혜택을 줬더니 지난달 30일 하루에만 17명이 물건을 샀다”고 좋아했다. 샌프란시스코 택시 업체인 ‘그린캡’ 관계자는 “매출이 15% 정도 늘었다”며 “오라클은 물론 큰 행사를 잘 운영하는 시에도 감사한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시는 오라클의 오픈월드 행사로 발생하는 매출이 올해 1억2000만달러로 지난해보다 20%가량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포천 500대 기업 관계자들이 초청을 받고 세계 144개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만큼 지역 홍보 효과도 크다. 지난해에는 에드윈 리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직접 행사장을 찾아 도시를 소개하는 자리를 갖기도 했다. 당시 그는 “샌프란시스코는 정보기술(IT)이 발달하고 좋은 레스토랑·공원이 있는 살기 좋은 도시”라며 “오라클과 긴밀한 협력 관계가 유지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오라클뿐 아니라 애플, 인텔 등 세계적인 IT 기업들의 세계 개발자 콘퍼런스도 매년 열린다.

오라클 행사에 참석한 한 국내 기업 관계자는 “한국에서 기업이 길거리까지 막고 대규모 행사를 벌이겠다고 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과연 받아들였겠는가”라며 “기업과 도시가 상생 발전할 수 있는 긍정적인 방안을 찾아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