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맞아 ‘영화의 바다’로 떠나보자.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www.biff.kr)가 4~13일 해운대 영화의 전당 등에서 열린다. 중국 여배우 탕웨이와 국민배우 안성기의 사회로 개막하는 이번 영화제에는 75개국 303편의 작품이 선보인다.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영화는 93편, 자국을 제외한 해외에서 처음 상영되는 영화는 39편이다. 개막작은 홍콩 렁록만, 서니 럭 감독이 공동으로 만든 범죄 심리 영화 ‘콜드 워’, 폐막작은 방글라데시 모스타파 파루키 감독의 ‘텔레비전’이다. 장동건과 장쯔이가 나선 연애 심리학의 고전 ‘위험한 관계’, 전두환 정권 시절 고문 현장을 고발한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1985’ 등 화제작들도 선보인다. 원로배우 신영균 씨의 회고전도 마련돼 ‘빨간 마후라’ ‘대원군’ 등 8편이 소개된다. 다양한 부대행사도 열린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와 콜센터(1666-9177)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로그래머들의 추천작을 소개한다.

◆터치

사연 많은 세 식구의 이야기이자 앞으로 완결지을 ‘생명 3부작’의 첫 편이다. 카메라가 비추는 가족사에는 어떤 보편성이 생동한다. 유준상과 김지영의 연기가 뛰어나다. 특히 김지영의 열연은 ‘재발견’이란 수식어를 붙여도 될 만하다. 민병훈 감독.

◆명왕성

명문대학 입학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 고3 우등생들의 이야기. 세련된 영화적 화법으로 경쟁 일변도의 교육현실에 한방을 먹인다. 올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에서 단편 ‘순환선’으로 수상한 교사 출신 신수원 감독의 장편.

◆일본의 비극

일본 사회의 치부를 들춰낸 고바야시 마사히로의 문제작. 무라이는 아내의 기일에 폐암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퇴원한 뒤 식음을 전폐한다. 무라이 가족의 비극은 일본 빈민층의 현실이다. 2010년 불법 연금 사건과 2011년 대지진 사건을 조합했다.

◆이샤크자아데

셰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 발리우드식으로 재해석했다. 정치적으로 앙숙인 두 가문의 파르마와 조야는 증오 속에서 사랑을 시작한다. 발리우드 영화 특유의 춤과 노래가 인상적이다. 하비브 파이잘 감독.

◆이프 온니 에브리원(IF Only Everyone)

아름다운 러시아 소녀 샤샤가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 아르메니아로 간다. 구소련 해체 시기에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젠의 무력충돌 때 희생된 것. 전쟁의 상처를 풀어가는 아름다운 로드무비다. 나탈랴 벨랴우스케네 감독.

◆여자의 호수(Woman’s Lake)

레즈비언 영화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 로사는 어망을 설치해 물고기를 잡는 일을 한다. 그녀에게는 사업을 하는 동성 연인이 있다. 어느날 젊은 레즈비언 연인들이 찾아와 그녀들과 함께 지내면서 네 여인들의 감정이 흔들린다. 졸탄 파울 감독.

◆유마(Yuma)

1990년대 초, 동유럽이 민주화로 이행하던 시기의 이야기를 갱들을 내세워 서부극 스타일로 풀어낸다. 폴란드와 독일의 접경지대에 살고 있던 폴란드 청년 지가와 그의 친구들은 국경을 넘어 독일 가게를 드나들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본주의와 민주화의 격랑으로 빠져든다. 피오트르 물라훅 감독.

◆정원사(The Gardener)

이란의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과 그의 아들 메이삼이 이스라엘의 하이파를 찾아 종교관, 세계관, 영화관 등 다양한 분야를 탐색하는 영화다. 하이파는 평화를 강조하는 종교 바하이의 본거지. 그곳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국경과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이야기를 펼쳐낸다.

◆화부(The Cremator)

작은 마을의 화장터에서 일하는 화부 카오는 시신을 영혼결혼에 연결시키는 일도 한다. 카오는 어느날 암 진단을 받고 자신의 영혼 신붓감을 찾아나선다. 그러다 얼마 전에 죽은 여인의 동생이 언니의 시신을 찾으러 오면서 위기에 빠진다. 중국에서 주목 받는 젊은 감독 펑타오의 수작이다.

◆유령(Apparition)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종교와 용기, 죄의식을 다룬 영화. 마지막 반전이 충격적이다. 외딴 수도원에 어린 수녀가 들어온다. 그녀는 어느날 마을에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 흉악한 남자들에게 강간을 당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