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사들이 국내 연구진이 진행하는 글로벌 임상시험에 주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국 임상시험 기관의 전문인력과 시설 등 인프라, 임상시험 결과의 질적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초기 임상 가파른 증가세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국내 임상시험의 국제 경쟁력 지표가 되는 초기 임상시험(전 임상 또는 0상, 1상) 승인 비율은 2009년 21.3%(85건)에서 2011년 29.6%(149건)로 증가했다.

0상 임상은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1상 착수 전에 최소한의 지원자에게 적은 용량으로 실시하는 임상시험이다. 1상은 소수의 인원을 대상으로 약물의 안전성을 주로 본다. 2상에서는 유효성을 평가하기 시작한다. 항암제를 예로 들면 약물 투여 후 종양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진행을 얼마나 늦출 수 있는지 등을 본다.

3상은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기존 치료제와 비교해 치료 효과가 얼마나 더 좋은지, 더 안전한지 등도 평가하며 복용 횟수 등 편의성도 평가한다. 2·3상을 묶어 후기 임상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신약은 3단계 임상(1~3상, 0상은 특수한 경우)을 거쳐 결과를 평가받고 식약청에서 품목허가 후 시판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 단계는 보통 5~10년이 걸린다. 또 신약이 건강보험에 등재하기까지는 짧게 수개월~수년이 걸린다. 초기 임상에서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후기 임상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약이 나올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초기 임상은 임상시험의 국제 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인 동시에 기존 약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단계다.

○국내의료진, 국제경쟁력 입증

국내 연구진의 임상 경쟁력 향상을 보여주는 예가 화이자의 ALK 양성 비소세포폐암 표적치료제 잴코리(성분명 크리조티닙)다. 이 약은 세계에서 한국 등 3개 국가에서만 초기 임상을 진행했다.

한국화이자 관계자는 “잴코리는 1~3상 전 과정에서 한국 의료진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임상 결과는 잴코리가 여러 국가에서 신약으로 허가받는 데 기여했다”며 “한국 연구진이 혁신 신약 개발의 전 과정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음을 입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선진국의 임상시험 데이터를 근거로 후보물질을 들여와 신약을 개발하던 패턴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ALK 양성 비소세포폐암은 기존 폐암과 달리 원인을 밝혀내기 힘든 폐암의 종류를 지칭한다. 잴코리는 ALK 양성 국소 진행성 혹은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위한 유일한 치료제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 임상을 진행하면 환자들에게도 혜택이 많다. 국내에서 초기~후기 임상을 진행하면 한국인 환자의 치료 데이터가 많이 쌓이기 때문에 의료기관들이 치료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치료 대안이 없는 절망적 상황인 경우 환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임상이다. 이 때문에 식약청은 희귀질환 항암제 등 치료 대안이 없는 경우는 2상 종료 후 3상 시행을 조건으로 미리 시판을 허가해준다.

한국화이자 관계자는 “잴코리는 시판 이후에도 후기 임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초기 임상부터 치료 효과를 본 환자들에게는 무상으로 치료제를 공급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진행하는 초기 임상을 환자들에 대한 실질적 혜택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조기 시판 허가뿐 아니라 조기 급여 등재 등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