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굴지의 두 대기업 회장님께.

회장님 안녕하세요. 한국경제신문에서 자동차를 담당하고 있는 최진석 산업부 기자입니다. 유럽발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전 세계로 번지는 가운데 글로벌 기업을 이끌어 나가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바쁘시겠지만 자동차를 담당하는 기자로서 두 회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지난 16일 강원도 태백레이싱서킷을 찾았습니다. ‘2012 헬로모바일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6전이 열리는 날이었죠. 다음달 최종전을 앞둔 만큼 우승의 향방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스탠드의 객석은 썰렁했습니다. 어림잡아 100여명의 관중들만 앉아 있었을 뿐이었죠. 하늘에선 비까지 내려 관중들은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경기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국내 모터스포츠의 저변이 약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상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물론 레이서들의 실력까지 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중한 실력으로 빗속을 뚫고 코너를 공략하며 우승을 다퉜습니다. 쫓고 쫓기는 혈투 끝에 우승자가 가려졌지만 관중들의 박수 소리는 빗속에 묻혀 버렸습니다.

우승자인 이재우 쉐보레 레이싱팀 감독 겸 선수에게 축하인사를 건넨 뒤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말했습니다. “용인 서킷이 하루빨리 개방되는 게 제 소원입니다.” 이유를 묻자 “대회가 흥행에 성공하고 모터스포츠가 발전하려면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태백레이싱서킷은 접근성이 너무 떨어져 사람들이 찾아오기가 부담스럽죠”라고 말하더군요.

맞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태백을 왕복해보니 기름값으로만 13만원이 나갔습니다. 4인 가족이 이 경기를 보려면 기름값 외에도 톨게이트 비용, 식비, 입장료 등 총 30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지출해야 합니다. 용인 레이싱서킷이었다면 비용이 절반 이하로 줄겠죠.

레이싱팀에도 엄청난 도움을 줍니다. 이재우 감독 겸 선수는 “대부분 레이싱팀이 용인에 본부를 두고 있어 태백이나 영암을 오가면 비용 부담이 크다”며 “한 해 예산의 3분의 1이 길에 뿌려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면 선수들의 실력과 차량 성능 향상에 좀 더 투자할 수 있을 것이고, 국내 모터스포츠 발전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내년에는 용인 레이싱서킷이 개방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이곳에서 보다 많은 관중의 박수와 함성소리가 울려 퍼지길 기대합니다.

또 다른 회장님께도 소원이 있습니다. 국내에 한국GM이 운영하는 쉐보레 레이싱팀은 있지만 현대차, 기아차 레이싱팀은 없습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두 회사가 레이싱팀을 운영하지 않는 것은 모터스포츠 관계자들이 납득하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물론 간접적으로 모터스포츠를 후원하고 있지만 국내 시장 점유율이 10% 미만인 한국GM이 팀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현대·기아차도 대회당 최소 두 개 이상의 팀을 운영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현대·기아차의 2.0 터보 GDI 엔진은 최대출력이 270마력에 달해 전 세계 자동차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런 멋진 엔진을 갖고 있는 회사가 레이싱서킷에서 극한의 성능을 뽐낸다면 소비자들의 신뢰는 더 높아질 것이라 믿습니다. 레이싱을 통해 피드백되는 차량의 정보는 신차 개발에도 유용하게 쓰일 것입니다. 실력은 있지만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한 선수들이 꿈을 이룰 것이며, 관중들은 더 많은 팀이 경쟁하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현대·기아차의 성능을 두 눈으로 확인할 것입니다.

제가 드린 말씀은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국내 모터스포츠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바쁘시겠지만 이 점 깊이 고려해주시고, 앞으로 ‘선진국형 스포츠’인 모터스포츠가 발전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F1(포뮬러원) 경기가 열리는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입니다. 날씨가 쌀쌀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