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프라도미술관 하면 프란시스코 고야의 마하 부인을 빼놓을 수 없다. 마하 부인은 ‘옷 벗은 마하’와 ‘옷 입은 마하’가 쌍으로, 종교재판까지 받으며 수많은 일화를 남긴 유명한 작품들이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두 팔을 머리 뒤로 한껏 올리고 요염하게 자세를 취한 여인인데, 하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마하이고, 다른 하나는 하얀 드레스에 붉은 색 허리띠를 두르고 금색 신발까지 챙겨 신은 모습이다.

필자는 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인상적인 포스터들을 사오는 습관이 있다. 이번 프라도미술관 방문 때도 기념품 코너에 들렀더니 손님이 홍수처럼 밀려드는 탓인지 판매원이 일일이 화집이나 포스터 엽서 등을 건네지 않고, 손님이 직접 상품을 선택하도록 돼 있었다. 그런데 포스터는 펼쳐진 상태가 아니라 둥글게 만 상태였다. 원하는 그림이 있으면, 그 그림에 붙여진 번호표를 기억해서, 정해진 번호표 칸 안에 들어 있는 포스터를 꺼내어 계산대에 가져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미술관 측에서 미리 말아놓아 관광객들이 가져가기 편하게 배려한 것 같았다.

호텔 방에 돌아와 포스터를 풀었을 때 문제가 생겼다. 옷 벗은 마하는 제대로 가져왔으나 옷 입은 마하는 없고 대신에 전혀 엉뚱한 풍경화가 들어 있었다. 미술관 측에서 잘못 분류해 놓았다기보다, 관광객들이 포스터들을 뽑아보고 도로 끼워 놓는 등 그 혼란스런 과정에 다른 번호의 포스터가 잘못 섞여든 듯했다. 자세히 보니 둥글게 만 포스터의 끝자락에도 그림 제목이 개미만하게 적혀 있었으나, ‘숫자 바보’는 실체를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일정상 포스터를 바꾸러 갈 수 없어서가 아니라, 주변을 휩쓸고 있는 숫자놀음에 스스로 합류한 자신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가는 숫자 놀음에 폭탄을 맞아 난리법석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국의 43개 사립대가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13개교는 학자금 대출제한 대학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전임교원 확보율, 교육비 환원율 등 평가지표가 다 수치로 환산됐다. 하위 15%라는 수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수치에 의해서, 21세기 문화강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은 예술대나 문화 관련 전공들이 많은 대학교들을 ‘부실대학’으로 분류하고 말았다. 수치만 확인하고, 대학의 실체를 확인하지 않아, 대학가의 꼭 보호해야 할 주요 학문과 영역들이 ‘옷 입은 마하’처럼 눈앞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며칠 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 출마 선언으로 정치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언론들은 쟁점이 되고 있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대통령 후보들의 선호도 수치를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선거가 끝나는 시점까지 국민들은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수치를 접하게 될 것이다. 그 수치는 프라도미술관이 정해준 포스터 번호들처럼 제대로 물건을 찾아갈 수 있도록 방향 설정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수치에만 근거해 실체를 확인하지 않고 이 번호 저 번호 넣었다 뺐다 하는 과정에서 뒤섞이고 혼돈돼, 엉뚱한 풍경화를 들고 온 것처럼, 엉뚱한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실수를 하게 될까 염려된다. 남아 있는 기간 동안 수치에만 의존하지 말고 여러 후보들의 실체를 차근차근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를 위해 후보들의 생각이 점점 어떻게 변하는지 추적해가는 것이 무엇보다 유효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치는 물론 선험적인 이미지와 전혀 다른 후보의 실체를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에서 느꼈던 정취와 감각을 좀 더 연장하는 방법으로 포스터를 액자에 넣어 한동안 벽에 걸어두곤 했다. 스페인 여행 후 짝하여 나란히 걸어두려고 했던 ‘옷 벗은 마하’와 ‘옷 입은 마하’의 꿈은 깨져버렸고, ‘옷 벗은 마하’와 풍경화 포스터는 둘둘 말려 방치되고 있다. 숫자 바보가 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한다는 의미에서 이 ‘터무니없는 짝’을 액자에 넣어 한동안 걸어두어야겠다.

김다은 < 소설가ㆍ추계예술대 교수 daeun@chugye.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