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1시54분(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트레이더들은 자리에 얼어붙은 채 모니터를 멍하니 들여다봤다. 1분도 안 되는 사이에 원유 가격이 배럴당 3달러 넘게 급락했기 때문. 배럴당 98달러를 웃돌던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이 순식간에 94.83달러로 내려앉았다.

기름값이 떨어지자 구리, 금 등 다른 상품 가격도 동반 하락했다. 시장 참가자들과 규제당국은 하루 종일 원인 분석에 분주했다. 하지만 장이 끝날 때까지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가격 급락 직후 트레이더들은 거래소 내의 기술적 오류나 일부 트레이더가 실수로 주문을 내는 ‘팻핑거(fat finger·두꺼운 손가락이 키보드를 잘못 누르는 것을 비유)’를 의심했다. 하지만 기술적 오류로 급락한 가격은 이내 정상화되는 것이 보통인 데 반해 이날은 하락세가 길게 이어졌다. NYMEX를 운영하는 CME(시카고상업거래소)그룹도 “기술적 오류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전략비축유(SPR)를 방출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이 “전략비축유와 관련해 바뀐 건 없다”고 밝히면서 이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나마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원인은 이날이 WTI 10월물의 옵션 만기일이었다는 것. 유가 상승을 점치고 콜옵션(미리 정해진 가격에 상품을 살 수 있는 권리) 계약을 맺어놨던 트레이더들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근처에서 힘을 잃자 대거 권리를 포기하면서 유가가 급락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10월 인도분 WTI 가격은 장 막판 낙폭을 일부 회복해 2.4% 내린 배럴당 96.62달러에 장을 마쳤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