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원전 제로'선언…"2040년까지 모두 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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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脫원전'에너지 전략 확정
40년 넘으면 가동 중단
신·증설은 원칙적 금지
"태양광·풍력 등 집중 투자 친환경 산업 발전 기폭제"
40년 넘으면 가동 중단
신·증설은 원칙적 금지
"태양광·풍력 등 집중 투자 친환경 산업 발전 기폭제"
일본 정부가 ‘원전 제로(0)’를 장기 에너지정책 목표로 최종 확정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년 반 동안 고심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이로써 일본은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탈(脫)원전’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국가가 됐다. 미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3위 원전대국인 일본이 탈원전의 길을 가게 되면 세계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파장도 클 수밖에 없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일본의 탈원전 실험 시동
일본 정부는 지난 15일 ‘탈원전’ 전략을 담은 새로운 에너지·환경전략을 확정, 발표했다. 2030년대까지 원자력 의존도를 제로로 낮추겠다는 것이 골자다. 원전 비중을 낮추는 수단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40년 원칙’으로 불리는 원전 폐기 정책. 가동연수가 40년을 넘은 원자로는 차례차례 운영을 중지해 원전 비중을 자연 감소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이 방법만으로도 2049년이 되면 일본 내 원전은 한 곳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두 번째는 현재 정기검사 등으로 가동이 중지된 원자로의 엄격한 선별.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철저한 안전성 검사를 통해 합격 판정을 내린 곳만 재가동시킨다는 방침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원자력 발전소 신·증설은 원칙적으로 금지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월부터 장기 에너지정책 수립을 위한 여론수렴 과정을 거쳤다. 국민에게 제시한 대안은 원전 비중 0%, 15%, 20~25% 등 세 가지. 당초 일본 정부는 내부적으로 15%를 목표로 삼았지만 공청회 등을 거치면서 원전 제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탈원전’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기 전인 2010년 일본의 원자력 의존 비중은 26% 수준이었다.
○신재생에너지로 대체
일본은 원전이 빠진 공간을 메울 전략도 수립했다. 중심축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다. 1100억㎾h(2010년) 규모인 재생가능에너지의 발전량을 2030년까지 3000억㎾h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아직 신재생에너지의 경쟁력은 원전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주택에 설치하는 태양광 발전 설비의 경우 원전 1기와 맞먹는 전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1조6000억~3조3000억엔의 투자비가 필요하다. 원전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돈(4000억엔)의 4~8배 수준이다. 어느 나라보다 유리한 입지 조건을 갖고 있는 지열 발전조차 원전에 비해 두 배가량의 돈이 든다. 일본 정부는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정책자원을 집중할 방침이다. 후루카와 모토히사(古川元久) 국가전략담당상은 “이런 제약이 역으로 성장의 속도에 탄력을 붙이는 ‘용수철’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답보 상태인 친환경 산업 발전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하이브리드카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와 축전지다. 탈원전으로 인한 전력 부족 우려가 오히려 이들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신산업 창출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고 보도했다.
○해결해야 할 과제 산적
일본 정부가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다. 당장 어떻게 부족한 에너지를 메워나갈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액화천연가스(LNG)를 이용한 화력발전소의 확대다. 일본 정부는 2020년까지 신설하는 발전소의 90%를 LNG 화력발전소로 채우기로 했다. 그러나 무작정 늘리기엔 문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비용 부담이 크다.
일본은 이미 세계 LNG 생산량의 30%를 소비하는 1위 수입 국가다. 원전 사고 이후엔 수입량이 더 늘었다. 올 1~6월 LNG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 일본의 소비량이 급증하면서 국제 시세는 동일본 대지진 전에 비해 60% 이상 올랐다.
셰일가스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다. 미국 셰일가스값은 LNG의 5분의 1 수준이다. 대체할 수만 있으면 에너지비용 증가에 대한 고민은 상당 부분 해결된다. 그러나 미국은 셰일가스 수출국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으로 한정하고 있다. 일본은 대상이 아니다. 외교력으로 어느 정도까지 돌파해 내느냐가 관건이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