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김지연 “훈련이 취미, 쉴 땐 잠자기 바빠요”


2012년 8월 2일, 런던올림픽에서 전 세계 펜싱 관계자 및 펜싱 팬들이 놀랄 수밖에 없는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누구나 금메달을 의심하지 않았던 난공불락, 절대 강자, 세계 최강의 여검객으로 불리던 미국의 마리엘 자구니스 선수가 준결승전에서 무명에 가까운 한국의 여검객에게 역전패 당한 것이다. 경기를 보고 있던 펜싱 관계자 및 팬들은 물론 올림픽 3연패를 노리고 있던 자구니스 선수 자신조차도 경기 결과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서 대한민국의 펜싱 사브르 여자 국가 대표 김지연 선수가 펜싱 헬멧을 벗어든 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감격의 환성을 지르고 있었다.

“사실 저도 이길 줄은 몰랐어요. 올림픽 이전에 다른 대회들에서 만났을 때도 거의 이기지 못했었거든요. 게다가 초반에 너무 큰 점수 차이가 나서 ‘이러다 지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어디 그녀뿐이겠는가, TV를 통해 경기를 지켜보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의 승리를 점치지 못했다. 초반의 경기 양상만 보고 섣불리 패배를 짐작하고 채널을 돌린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끈질긴 투지를 불태웠고 결국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승리를 쟁취해 냈다.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역전승은 일약 ‘김지연’이라는 이름을 굵고 강하게 아로새겼다.

“너무 극적인 승리였던 터라 저 역시도 결승전보다 그때의 경기가 더 기억에 남아요.” 결승에서 세계 랭킹 2위인 러시아의 소피아 벨리카야 선수를 15 대 9로 비교적 손쉽게 꺾은 그녀는 한국 여자 펜싱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시상대 제일 높은 곳에서 태극기를 바라보는 감격의 순간을 맞았다. 그곳에서 눈물 대신 환한 웃음으로 자신의 승리를 만끽했다.

“금메달을 따고 우시는 분들도 많던데, 저는 그저 그 상황이 너무 즐거웠어요. 사실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게 처음이었거든요. 다른 대회에서 다른 선수들이 시상대 위에 설 때, 혹은 TV에서 올림픽 경기들을 볼 때 ‘나도 저런 자리에 설 수 있을까?’ 상상만 했었어요. 그 상상이 현실로 이뤄졌으니 그저 좋기만 하더라고요.(웃음)”

원래 육상과 태권도를 즐기던 그녀가 처음 검을 잡은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부산 재송여중 1학년 때 달리기를 하던 그녀를 보고 체육 선생님이 펜싱을 권한 것이 계기가 됐다.

“선생님이 시키니까 일단 펜싱부를 보러 갔죠. 거기서 언니들이 단복을 입고, 펜싱을 하고, 찌르기에 성공할 때마다 ‘얏!’하고 기합을 넣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고요. 펜싱부원들끼리 평소에도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고요.”

손에 처음 쥔 검은 신기하면서도 재밌었다. 비록 첫 대회에서는 64강에도 못 들었지만, 그리고 이후로도 딱히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검을 휘두르는 일이 점점 더 좋아져만 갔다. 몸통 공격만 인정되는 플뢰레를 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당 선생님의 권유로 팔과 머리를 포함해 상체 전부를 공격할 수 있는 사브르로 전환했다. 다행히 사브르로 전환한 뒤에는 육상 소녀다운 빠른 발놀림이 장점이 돼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그 후 고교를 졸업한 뒤 전북 익산시청 팀에 소속돼 체계적인 지원 아래 실력을 더욱 키워나갔다.


금메달의 꿈, 앞으로도 계속된다

물론 대다수의 운동선수들이 그러하듯 그녀 역시 힘든 순간도 많았다. 흔히 펜싱 훈련이라고 하면 그저 칼로 찌르기 연습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펜싱 역시 다른 운동 종목 못지않게 체력 훈련이 필수였다. 달리기부터 웨이트 트레이닝, 검술 연습에 이르기까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되는 훈련, 훈련, 훈련을 하다보면 취미 하나 제대로 가질 시간이 없었다. “취미가 뭐냐고 물어도 답할 게 없어요. 아침 일찍 눈뜨면 바로 훈련을 시작해 저녁 9시나 돼야 훈련이 끝나거든요. 숙소에 돌아오면 그저 곯아떨어지기 바쁘고요.”

부모님과 떨어져 낯선 지역에서 운동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는 그나마 제가 제일 잘하는 것 같았는데, 이곳에 오니까 저보다 잘하는 선수가 많더라고요. 제가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불안하기도 했죠.”

운동이 직업이다 보니 당연히 다칠 때도 많았고 아플 때도 많았다. 힘든 나머지 몇 번이나 그만두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았다.

“펜싱을 그만두면 분명 후회할 테니까요.” 펜싱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알았다. 게다가 익산시청의 감독과 함께 훈련하는 동료 선수들도 그녀의 실력을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며 용기를 북돋워 주곤 했다. 그러기에 그녀는 국가 대표로 선발되고 올림픽 경기에 나갈 때까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올림픽이라는 최고의 무대에서 세계 최고의 검객들을 차례차례로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은 그렇듯 순간순간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올림픽이 끝나고 각 종목의 메달리스트들은 저마다 언론·방송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김지연 선수에게 쏟아지는 관심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이들은 실력과 미모를 갖춘 그녀가 ‘CF 스타’가 될 것이라며 장밋빛 미래를 점치고 있기도 하다. 누구라도 공연히 들뜨기 쉬운 상황, 하지만 그 가운데서 그녀는 의외로 나이답지 않게 차분히 호흡을 고르고 있다.

“금메달을 따고 난 후에 달라진 점이 참 많아요. 우선 가장 많이 변한 건 역시 알아봐 주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는 것이죠. 요즘은 어딜 가도 쳐다보는 시선들을 느껴요. 그때마다 행동도 더 조심하게 되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한 후 정해진 환영 행사들을 모두 마치고 바로 소속팀인 익산시청으로 향한 것도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은 그녀다운 태도였다. “서울에서 잠깐 부모님을 뵙고 아직도 부모님을 뵙지 못했어요. 익산에서 마련해 준 환영 행사에 참여한 뒤 부모님이 계신 부산으로 갈 예정이에요.”

짧은 휴식을 끝내면 바로 다시 훈련에 돌입할 계획이다. 9월 중순에 있을 국가 대표 선발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어쩌면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자신에게 보내주는 환호와 ‘미녀 검객’, ‘얼짱 검객’ 등의 칭찬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지는 않으리란 것을, 그리고 대중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란 것을…. 그러기에 그녀는 한시바삐 환호와 박수, 칭찬들 대신 묵묵히 땀 흘리는 훈련의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일 게다.

“2014년 아시안게임,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어요. 그러니 열심히 해야죠. 국민 여러분들도 부디 지금까지처럼 펜싱에 계속 관심을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관심과 기대야말로 가장 큰 응원이니까요.”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