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스페인의 8강전. 승부차기 끝에 한국이 승리하자 스페인에서 환호성을 지른 사람들이 있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도 이들은 스페인 선수가 아닌 상대국 선수를 응원하기 일쑤였다. 바로 카탈루냐(Cataluna, 영어로 Catalonia) 사람들이다.

카탈루냐는 스페인 동북부의 4개 주(州)로 구성된 자치지방이다. 인구는 750만명이며 스페인어와 함께 카탈루냐어를 공용어로 쓴다. ‘건축의 성자’라는 안토니 가우디의 걸작 건축물이 즐비한 바르셀로나가 대표도시다. 전설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도 이곳 출신이다.

카탈루냐는 수도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한 카스티야와는 역사 민족 언어 문화적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소수민족인 바스크족과 마찬가지로 독립의지도 강하다. 스페인 속에 비(非)스페인인 셈이다. 그래서 카탈루냐인(Catalan)에게 스페인 사람이냐고 묻는 것은 스코틀랜드인에게 영국인(English)이냐는 질문만큼이나 실례다.

카탈루냐와 카스티야 간 갈등은 한·일 간 감정보다 절대 덜하지 않다. 역사를 보면 납득이 간다. 지중해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카탈루냐는 15세기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통일왕국에 편입되지만 과도한 세금과 자치 규제로 갈등을 빚었다. 1640년과 1705년 두 번의 독립전쟁을 벌였으나 실패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은 씻을 수 없는 앙금을 남겼다. 카스티야의 독재자 프랑코에 맞선 공화파들이 카탈루냐로 집결했지만 소련의 배신으로 또 패배를 맛봤다. 내전 당시 상황은 조지 오웰의《카탈로니아 찬가》헤밍웨이의《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잘 묘사돼 있다.

그래서인지 프로축구 라 리가의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간 대결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스페인 축구가 실력에 비해 성과가 미미했던 것도 두 지역 출신 선수 간 알력 탓이었다. 하지만 ‘스페인의 히딩크’인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이 부임한 뒤 확 달라진 스페인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유로2012를 연이어 우승하며 무적함대로 군림하고 있다. 보스케가 카스티야 출신이면서 대표팀 주전 6명을 카탈루냐 출신으로 채워 화합을 이룬 게 비결이다.

축구에선 힘을 합쳤지만 경제위기는 또 다시 카탈루냐 독립운동의 불을 지피고 있다. 지난 11일 바르셀로나에선 150만명이 참가한 독립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새로운 유럽국가 카탈루냐’ ‘즉각 독립’ 등의 구호를 외치며 더 많은 자치를 요구했다. 카탈루냐에서 거둔 세금으로 다른 가난한 지방을 지원하다보니 정작 카탈루냐가 부채에 허덕인다는 얘기다. 견원지간인 카탈루냐와 카스티야의 동거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궁금하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