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 범죄현상을 보면, 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범행 방법이 잔인하고 흉포해졌다. 최근 10년간 강력범죄는 84.5% 증가했고 헌법재판소 결정에 나타난 법무부의견서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7년 사이 살인범죄는 1000건 이상, 강간범죄는 1만건 이상 발생했다고 한다.

대외적으로는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돼 인권선진국이 됐으나 다수 국민들은 법원이 선고한 사형판결을 전혀 집행하지 않고 있는 정부의 처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진보단체들과 상당수 종교계 인사들, 유럽연합(EU)과의 마찰을 우려한 외교당국의 반대에 부딪혀 법무부 장관이 사형을 집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형은 현행 형법상 실제로 존재하는 형벌이고 법원도 선고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도 두 차례에 걸쳐 합헌임을 인정했다. 다만 헌재의 지적과 같이 사형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폐지할 것인가는 입법정책의 문제이므로 국민의 대표가 모인 국회에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형법을 개정해 사형을 폐지하려면 그 이유와 근거를 명확히 적시하고 다수 국민을 설득해 동의를 얻어야 한다.

무엇보다 법이 개정될 때까지는 법을 준수해야 한다. 법에 따라 사형선고를 해놓고도 행정부 자의적으로 집행하지 않는다면 제도를 유명무실하게 하는 것이고 범죄자는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원칙이 무너지는 것이며 법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키는 일이다. 형사소송법 제463조에 사형은 법무부 장관의 명령에 의하여 집행한다고 돼 있고 제465조 제1항은 법무부 장관은 사형집행의 명령을 사형판결 확정일로부터 6개월 내에 해야 한다고 돼 있다. 누가 봐도 명백한 강제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훈시규정 운운하는 궤변도 들린다.

폐지주장 중에는 사형집행을 해도 살인범죄가 줄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제도는 범죄억지력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지극히 단순하고 유치한 수준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력범죄가 급증했다고 우길 수도 있다.

그러나 범죄 발생의 원인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어느 한 가지 요인으로 범죄가 급증하거나 급격히 감소할 수는 없다. 사형이 범죄억지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인류의 오랜 역사가 증명했고, 살아 있는 우리가 실제로 느끼고 있다. 인간의 생존본능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로 인해 사형이 가장 강력한 범죄억지력을 갖는다는 것이 헌재의 결론이다. 남의 생명을 짓밟은 잔혹한 범죄가 발생한 이후에 범죄자의 생명을 논하기에 앞서 일반예방책으로써 죽음이 두려우니 내 생명뿐 아니라 남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도록 범죄 발생 전에 미리 사형이라는 형벌을 형법에 정해놓는 것이다. 형법에서 사형을 삭제하게 되면 어떠한 흉악범죄를 저질러도, 아무리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상해도 내 생명은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가 된다. 법 이론가들은 감형 없는 종신형을 대안으로 주장하는데, 사형폐지라는 과녁에 화살을 쏘듯이, 오로지 사형폐지만을 목적으로 전혀 검증 안 된 새로운 형벌을 도입하자는 것은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짓이다.

또 종교적 신념에서 인권과 생명존중사상을 기반으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미 무참히 당한 무고한 피해자는 죽어 말이 없는데 이런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심리를 누가 보상해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의 범죄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누가 해소시켜줄 것인가.

EU가 우리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하면서 국회가 사형폐지법을 승인할 때까지 모든 사형집행을 중단하라는 결의를 채택했다고 한다. 외교당국이 사형을 집행하지 말 것을 권유하는 이유다. 외교당국의 외교통상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관료적 발상일 뿐이다. 그 밖에도 외국의 예와 세계적 추세를 들어 우리도 따라가야 한다고 하면서 베네수엘라가 150년 전에 사형을 폐지했고 EU의 여러 나라들이 사형을 이미 폐지했다는 예를 든다. 그러면서 사형폐지국의 흉악범죄율이 우리보다 더 높다는 것을 인정한다. 참으로 난센스다.

진보적 인권단체들은 국가가 국민을 죽이는 사형은 윤리적으로 모순된다고 한다. 국가는 인간이 만들어낸 무형의 정신적 구조물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모순을 내포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국가는 모든 사람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생명권과 무고하게 살해당한 선량한 시민의 생명권이 동일한 성격을 가진다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생명권이 충돌할 경우 범죄로 인한 무고한 시민의 생명권 박탈 방지가 우선시돼야 한다. 금지규범 위반인 범죄로서의 살인과 국가형벌권의 정당한 행사로서의 불가피한 생명권 침해는 구별이 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재판도 인간이 하는 일이라 인혁당 사건을 예를 들어 오판 가능성과 정치적 남용을 우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인혁당 사건은 쿠데타에 의한 절대 권력이 정치범에 대해 법을 악용한 전형적 사례이고 부끄러운 과거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컨대 칼이 살인에 사용되었다고 하여 무작정 칼을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고,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성숙해 여러 제어장치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크게 염려할 것은 없다. 수사기관의 과학수사와 법원의 삼심제, 정치범이나 증거의 증명력에 다툼이 있는 범죄자를 제외한 극소수에게만 사형이 선고되기 때문이다.

국가는 일반 국민을 범죄의 공포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할 책임이 있으며, 특히 약자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살인범죄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 어린이, 노인 등 약자다. 국가가 정의와 형평,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을 실현하는 의미에서 생명을 빼앗겨 억울함을 말할 수 없는 피해자와 그 가족을 대신해 정당한 응보로써 범죄자를 처벌해야 한다. 형사책임에 상응하는 적정한 처벌은 최선의 예방책이다. 다만 사형은 어디까지나 형벌의 일종일 뿐 완벽한 범죄대책은 아니다. 사형이라는 극형으로 처벌할 정도의 범죄가 발생하지 않아 사형제도가 폐지돼도 좋은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