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자녀까지 동원해 주식양도대금을 무려 일흔세 차례에 걸쳐 세탁하는가 하면 부동산 근저당권을 허위로 설정하는 등 국세청의 체납 세금 징수를 피하기 위한 고액 자산가들의 재산은닉 백태가 드러났다.

국세청은 12일 서울 수송동 국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2월부터 7월까지 고액체납자들의 체납 세금 8633억원을 징수했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체납자와 이를 방조한 친·인척, 친구 등 62명을 조세관련법 위반으로 고발조치하고 향후 징수 활동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재산 빼돌리고 파산신청

이날 공개된 자산가들의 재산은닉 행태는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할 정도로 부도덕했다.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다가 국세청 세무조사가 임박하자 예금 보험 주식 등 모든 금융재산을 해약, 해외로 빼돌린 국내 한 유명병원 이사 부인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본인 명의의 부동산도 친구를 시켜 거짓으로 근저당권을 설정토록 했다. 허위 매매계약서를 작성, 실제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부동산을 매매한 것으로 꾸며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기도 했다.

수십억원대에 달하는 주식 양도세를 내지 않기 위해 주식 양도대금을 친구 및 친구의 처와 자녀 명의로 73회에 걸쳐 세탁하고 배우자의 주택 구입과 대출금 상환 등에 사용한 모 법인 대표이사도 적발됐다. 그는 주식을 고가에 양도하고도 본인 명의의 재산이 없다는 사유로 파산신청을 하는 뻔뻔함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배우자 명의의 강남 198㎡(60평형) 고급아파트에 거주하며 해외로 빈번하게 골프 여행을 다니다 이를 수상히 여긴 세무당국에 적발됐다.

○320억원 체납자 적발

수출업체 대표 A씨의 경우 국세청에 적발되기까지 체납한 세금이 무려 수백억원에 달했다. 그는 국내 재산이 없다고 신고하고 배우자 명의의 강남 대형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다. 국세청 세무조사를 예상한 그는 미리 자신의 자산에 근저당을 설정, 대출을 받은 뒤 이 돈을 해외로 빼돌리고 본인 소유의 건물은 배우자에게 증여, 국세청의 재산 추적을 피했다. 해외출장을 나가 빼돌린 돈으로 외국에서 사업을 하려다가 해외 세무당국과 공조조사를 벌인 국세청에 덜미가 잡혔다.

또 모 건설회사 대표 B씨는 수백억원대의 법인세를 내지 않은 채 법인의 자산인 대형빌딩과 골프장 등을 배우자와 자녀에게 사전 증여하는 방식으로 넘기고 본인은 해외 휴양지로 도피해 있었다. 남아 있는 부동산 등도 미등기 상태로 보유, 보유 자산이 없는 것처럼 꾸몄지만 국세청 자금 추적에 걸렸다. 국세청은 미등기 부동산에 대해 소송을 제기, 320억원의 체납액 전액을 현금으로 징수했다.

○역외체납 추적전담반 신설

국세청은 작년부터 해외 재산은닉 및 자금 세탁 등이 급증하는 것을 보고 ‘숨긴재산무한추적팀’을 올 2월 가동했다. 200여명의 베테랑 조사관, 징세관 등이 투입했다. 조사 업무경력만 10년이 넘는 한숙향 숨긴재산무한추적 총괄팀장은 “최근 채무나 근저당을 허위로 만드는 등 신종 수법들이 등장하고 있다”며 “특히 해외로 돈을 빼돌리는 방식이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이에 따라 ‘은닉재산 추적 프로그램’ 등 별도의 감시 시스템을 마련하는 한편 전담 요원으로 구성된 ‘역외체납 추적 전담반’을 신설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