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초 영국과 나폴레옹의 프랑스 간 전쟁에서 나폴레옹은 대륙봉쇄령을 내려 영국의 대외교역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프랑스군의 군복은 여전히 영국에서 수출된 군복지(군복을 만드는 옷감)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나폴레옹은 영국을 ‘장사꾼들의 나라’라고 비웃었지만 우수한 제품과 불굴의 상술은 적진을 뚫은 것이다. 또한 군복지가 팔리는 것을 통해 적진의 상황도 간접적으로 파악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영국은 교전국과도 거리낌없이 무역거래를 했다.

한국과 일본이 사실상 외교전쟁인 상황 속에서 최근 무토 주한 일본대사의 관저에서 조촐한 만찬행사가 있었다. 우야마 경제공사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아 한국을 떠나기 전 한국의 경제인들을 초청한 자리였다. 한·일 간 악화된 국민감정을 생각해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인원이 ‘아무리 국가 간 관계가 불편하더라도 경제는 경제다’는 마음으로 자리를 채웠다.

양국 간 경제 관련 공식행사가 일부 취소되기도 한 상황인데, 우리 외교통상부와 지식경제부의 무역통상과 투자 담당 간부들의 모습도 당당히 보였다. 일본에서 이런 행사가 있었으면 과연 일본관리들이 참석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필자가 우야마 공사에게 농담을 던졌다. “양국 간 이 험악한 상황에서 적진을 잘 탈출하는군요.” 이 말에 폭소를 터뜨리면서도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무나 아쉽습니다. 지금이 한·일 간 경제관계는 최고로 활발하고 전망도 밝아서 할 일이 참 많은데요.”

일본으로부터의 투자가 최근 수년간 매우 큰 폭으로 늘고 있어 이제 일본은 다시 우리에게 최대의 투자국이 됐다.

한국의 일본산 부품의존도가 줄고 우리 부품이 일본에도 파고 들어가 고질적인 대일 무역역조도 줄어들고 있다. 한국산 스마트폰이나 액정표시장치(LCD) 등 소비재를 보는 일본 소비자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일본기업도 엔고, 전력난, 높은 세율 등 소위 6중고로 비명을 지르면서 적절한 해외투자처나 비즈니스 협력처를 찾다보니 한국 경제계와의 장기적, 수평적이며 보완적인 관계가 실제로 형성되고 있다. 이는 기술격차가 좁혀지고 있고, 한국의 시장규모도 커진 데다 일본에 파고든 신한류의 역할도 있을 것이다.

아시아권에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중국의 경제패권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한국과 일본의 경제교류는 더욱 활성화돼야 할 사항이다. 통화스와프 범위 축소를 검토한다든지 하는 속좁고 현실감 없는 일본 정치권 일각의 발상은 생각있는 일본인들도 냉소적이다. 일본 대사관 관계자들도 앞으로의 일본선거에서 무모한 국수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릴까 걱정했다. 독도,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 현안에서 우리는 역사의식과 민족적 자존심을 갖고 엄정히 대처해야 된다. 그래도 경제 교류는 흘러가야 된다.

수출이 8월 들어 마이너스를 보였다. 하반기 전망도 밝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국내외의 어떤 정치, 외교적 역풍에도 불구하고 수출은 꿋꿋이 버텨줘야 한다. 이럴수록 어떤 험한 곳이라도 찾아가야 한다. 오히려 어려운 곳에서 기회가 많았다. 이라크의 전쟁터에서, 리비아의 내전 속에서, 미얀마의 국제적 외면 속에서도 한국기업은 끝까지 남아서 다른 어떤 나라의 기업보다 확고한 신뢰의 뿌리를 내렸다. 수출이 잘된다고 내수도 꼭 잘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출이 안 되면 내수는 급격히 냉각되는 것이 우리 경제구조다.

우리가 내다 팔 수 있는 것은 상품이고 서비스고 건설이고 발전소나 플랜트이고 간에 모두다 세계 어느 곳에라도 수출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이것만이 경제위기 탈출의 유일한 길이다. 그렇지만 우리 수출은 휴대폰, 자동차, 섬유소재 할 것 없이 세계 각국에서 도전과 견제를 받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현명하고 실리적으로 돼야 한다. 재무장관 회담을 취소하는 일본보다 교전국에 군복 원단을 파는 영국을 보아야 한다.

조환익 < 한양대 석좌교수·전 KOTRA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