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 겪으며 '목청' 커진 버냉키·드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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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 따라잡기 - 세계 경제 쥐락펴락하는 美·EU 중앙은행
Fed 두 차례 경기부양…일부선 달러 약세 우려
ECB, 국채 무제한 매입…세계 주식시장 '급등'
"물가안정 충실해야"…역할 범위 논란도 일어
Fed 두 차례 경기부양…일부선 달러 약세 우려
ECB, 국채 무제한 매입…세계 주식시장 '급등'
"물가안정 충실해야"…역할 범위 논란도 일어
“중앙은행은 금융시장의 구원자인가, 돈을 풀어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정신병자인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국의 블랙록자산운용에서 채권운용을 책임지고 있는 피터 피셔가 얼마 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직면한 큰 전환 중 하나로 중앙은행의 역할 변화를 꼽았다. “중앙은행 총재의 말 한마디에 주식시장이 요동칠 만큼 영향력이 커진 이유를 투자자들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
어지러운 세상이 영웅을 만들어내듯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는 미국 중앙은행(Fed)과 유럽중앙은행(ECB)을 세계 경제의 중심무대에 올려놓았다. Fed와 ECB는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것 이외에 채권 매입을 통한 경기 부양 등 과거에는 쓰지 않았던 정책수단들을 동원한다.
투자자들은 중앙은행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6일 유로존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는 방안을 발표하자 전 세계 주식시장이 급등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본래의 역할인 물가 안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중앙은행 역할 범위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Fed의 두 마리 토끼 잡기
흔히 Fed라고 불리는 미국 중앙은행, 즉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913년 설립됐다. 중앙은행 기능이 주별로 흩어져 있어 금융위기가 자주 발생했던 것이 설립 배경이다. 설립 당시 통화정책은 정부가 주도했기 때문에 Fed의 역할은 돈을 찍어내는 일에 불과했다.
Fed의 역할은 1930년대 대공황과 1970년대 오일쇼크를 거치며 확대됐다. 오일쇼크로 물가와 실업률이 함께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미국 의회는 1977년 연방준비은행법을 개정했다. 고용 극대화와 물가 안정을 목표로 적정 수준의 장기 금리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법으로 명시했다.
이때부터 Fed는 고용 극대화와 물가 안정이라는 ‘이중책무(dual mandate)’를 갖게 됐다. 주요국 중앙은행 중 법적으로 이중책무를 가지고 있는 곳은 Fed가 유일하다. 한국은행을 포함한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1980년대 이후 Fed도 사실상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왔다. 경제가 오랜 호황을 누리면서 일자리 창출보다 물가 안정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바뀐 건 2007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실업률이 치솟으면서다. Fed는 통화정책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발표문에 2008년 12월 처음으로 ‘고용 극대화’를 정책 목표로 명시했다.
Fed는 같은 날 회의에서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해 시중에 돈을 푸는 이른바 1차 양적완화를 발표했다. 양적완화란 금리를 낮추지 않고 채권 매입 등을 통해 통화량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조치다. 이후 차츰 안정되던 금융시장이 유럽 재정위기로 다시 불안해지자 Fed는 2010년 1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6000억달러어치 장기 국채를 사들이는 2차 양적완화를 실시했다.
두 차례의 양적완화를 통해 주가가 상승하는 것을 지켜본 투자자들은 이제 3차 양적완화를 기대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실업률은 여전히 8%를 웃돌고 있다는 게 3차 양적완화를 기대하는 논리다. 시장은 오는 12~13일 열리는 9월 FOMC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강한 달러를 지켜라”
Fed의 양적완화 정책이 모두에게 환영받는 건 아니다. 공화당은 금융위기 이후 Fed의 역할이 지나치게 확대된 것에 불만을 제기해왔다. 양적완화를 통해 시중에 돈이 과도하게 풀리면 미국 달러 가치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공화당 중진인 케빈 브래디 하원의원(텍사스)이 지난 3월 ‘강한 달러 법안’을 제출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 법안의 골자는 Fed의 정책목표를 이중 책무에서 물가 안정이라는 단일 책무로 줄이자는 것. 물가 안정과 고용 극대화라는 목표는 양립할 수 없으며 양적완화 정책은 결국 인플레이션만 유발할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벤 버냉키 Fed 의장은 지난달 31일 Fed의 연례 콘퍼런스인 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국내총생산(GDP)이 3% 늘어났고 20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정책의 당위성을 옹호했다. 그는 양적완화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시장은 이를 버냉키 의장이 3차 양적완화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해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드라기가 불태화 정책 내놓은 이유는?
ECB가 처한 환경과 역사적 배경은 Fed에 비해 더 복잡하고 뿌리 깊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ECB의 최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분데스방크는 ECB가 6일 발표한 스페인, 이탈리아 등 취약국 국채 매입을 강력 반대해왔다.
이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겪었던 하이퍼인플레이션의 ‘트라우마(정신적 상처)’와 깊은 관련이 있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10억마르크라는 천문학적인 전쟁 배상금을 내야 했다. 연합국은 이 돈을 빨리 받아내기 위해 당시 독일 중앙은행이던 제국은행을 민영화해 연방은행으로 호칭을 바꾸고 주조권(화폐발행권)을 빼앗았다. 그리고 화폐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이에 1921년 11월 달러당 330마르크를 유지했던 마르크화 환율은 1923년 11월 달러당 4조2000억마르크로 치솟았다. 지폐가 휴지조각이 되면서 독일 중산층의 생활은 붕괴됐고 이는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독일인들은 인플레이션을 광적으로 싫어하게 됐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출범한 분데스방크에 물가 안정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정책목표가 됐다.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 총재가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는 ECB의 국채 매입을 사활을 걸고 반대해온 건 이런 정치적 배경에서다.
이탈리아 출신인 드라기 총재의 입장은 다르다. 지난 7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유로존을 지키겠다”고 공언한 드라기 총재는 취약국 국채 매입을 통해 국채 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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