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이 평가한 한국의 국가경쟁력…정부·정치권·노사 '한국病' 그대로
세계경제포럼(WEF)이 5일 발표한 국가 경쟁력 조사 결과는 고질적인 ‘한국병(病)’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조사 때마다 낮은 점수를 받는데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정부와 정치권의 비효율성, 대립적 노사관계 등이 대표적이다. 가계부채에 짓눌려 있는 은행 건전성도 하위권이었다.

◆12개 항목이 100위권 밖

세계경제포럼이 평가한 한국의 국가경쟁력…정부·정치권·노사 '한국病' 그대로
이번 WEF 평가에서 한국은 19위라는 비교적 양호한 성적을 받았지만 세부항목에서는 개선점이 적지 않다. WEF가 평가 잣대로 활용한 111개 항목 중 약 10%에 해당하는 12개 분야에서 전 세계 144개국 중 100위권에도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은 낙제점을 받은 셈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제도적 요인’이 가장 문제가 많았다. ‘정부 정책 결정의 투명성’은 133위로 꼴찌나 다름없었고 ‘정치인에 대한 공공의 신뢰’는 117위에 머물렀다.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인기 영합적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국민들은 ‘미덥지 못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또 ‘정부 규제 부담’은 114위로 처졌고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지출의 낭비 여부’는 작년 95위에서 올해 107위로 더 떨어졌다.

기업제도 측면에서도 ‘기업 이사회의 유효성’(121위), ‘소수 주주의 이익 보호’(109위)가 취약점으로 지적받았다. 그동안 경쟁력 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받았던 ‘노동시장의 효율성’도 여전히 미흡했다. ‘노사간 협력’이 129위에 그쳤고 ‘정리해고 비용’(117위), ‘고용 및 해고 관행(109위)’도 좋지 못했다.

◆경제력 집중 완화

반면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이 심해지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기업 경쟁 환경은 상당 부분 나아졌다. ‘시장 경쟁의 강도’(15위→11위)는 상위권에 들었고 ‘독점 정도’(114위→99위)도 비교적 큰 폭으로 순위가 올랐다.

창업 여건도 나아졌다. ‘창업시 행정절차 수’가 78위에서 29위로 뛰었고 ‘창업시 소요시간’이 58위에서 25위로 상승했다. 또 ‘무역장벽 정도’가 118위에서 92위로 개선된 게 눈에 띈다. 미국,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영향으로 ‘한국 시장은 폐쇄적’이라는 인식이 줄어든 것으로 해석된다. 보건·초등교육 분야에서는 ‘기대수명’(17위→15위)과 ‘초등교육의 질’(22위→14위)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금융 측면에선 ‘금융서비스 구입 능력’(62위→42위)과 ‘법적 권리 지수’(39위→24위) 순위가 크게 올랐지만 ‘벤처자본의 이용 가능성’(100위→110위)은 큰 폭으로 떨어졌다.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벤처시장에 찬바람이 부는 것과 관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출 접근성’은 지난해 127위에서 올해 115위로 올랐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것으로 지적됐다.

‘은행 건전성’(98위)도 열등생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한국은 가계부채가 계속 증가하면서 금융권 부실이 심해질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