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7~8년밖에 안 남은 은퇴...일단 퇴직금 전용 통장부터 가입하라
인천시 남동공단의 한 중견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김진철 씨(53)는 요즘 고민이 많다. 정년은 가까워 오는데 퇴직 이후의 생활 대책은 마땅히 세우지 않았다. 현재 회사에서 부장인 그의 소득은 연 6000만원 정도다.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두 자녀의 교육비로만 월 200만원이 들어간다. 부동산 버블이 막바지로 치닫던 2007년 빚을 끌어다 산 100㎡(30평)대 아파트 때문에 은행 대출이자만 매달 150만원을 낸다. 여기에다 각종 공과금과 생활비 등을 쓰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은 몇십만원에 불과하다. 견디다 못해 올해 초 아파트까지 내놓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 탓에 매수자가 아예 없다. 김씨는 한국 베이비부머의 전형적인 사례다.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는 현재 720여만명에 달한다. 부모님을 책임져야 하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식들에게 노후를 기대할 수 없는 첫 세대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재무설계 전문가들은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의 재무상태를 냉철히 파악하는 것이 은퇴설계의 절반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택 다운사이징으로 가계부채 부담 완화

김 부장의 사례처럼 베이비부머들은 과도한 부동산 대출로 이자 갚는 데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통계청의 가계금융조사를 바탕으로 베이비부머 가구의 자산 현황을 집계한 결과, 2010년 말 이들 가구의 평균 총자산은 3억4000만원이다. 부동산 자산과 금융 자산 비중은 8 대 2로 나타났다. 평균 부동산 자산 비중을 보면 40대 가구주가 70.7%, 50대는 78.6%, 60대는 85.6%로 나타났다. 소득이 보장된 시간이 많지 않은데도 환금성이 떨어지는 부동산만 틀어쥐고 있는 것이다.

채무부담을 느끼고 있다면 주택 다운사이징(집의 크기를 줄여나가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집을 팔고 가격이 저렴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 부담스런 가계부채를 줄이는 지름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보유 중인 집을 처분해 작은 집으로 옮긴 뒤 발생하는 차익으로 수익을 내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오피스텔 투자가 대표적이다. 서울 중심지역의 오피스텔 평균수익률은 5% 중반 정도이며 각종 비용을 공제하면 4%대로 낮아질 수 있다.

◆개인연금으로 국민연금 보완

퇴직 후 소득원이 국민연금밖에 없다면 당장 다른 연금제도를 살펴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인구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다. 문제는 국민들의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지만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재원은 부족하다는 점이다. 실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일반적으로 40%를 밑도는 수준인 탓에 개인연금은 노후 준비를 위한 필수상품이 된 지 오래다. 정부로선 개인이 스스로 연금준비를 할 수 있도록 각종 연금 상품에 대한 ‘세제혜택’을 주는 방법밖에 없다.이에 따라 개인연금 상품에는 세제혜택이 따라붙는다. 개인연금 종류로는 △은행에서 판매하는 연금저축신탁 △자산운용사의 연금저축펀드 △보험사의 연금저축보험 등이 있다.

연금저축펀드는 실적배당 상품으로 시장금리 대비 초과수익을 추구할 수 있어 공격적 투자성향인 사람에게 적합하다. 주식형펀드로 선택한 경우 자산의 60% 이상을 주식에 투자해 원금손실의 위험이 있지만, 연금저축 상품의 특성상 장기간 적립식으로 주식에 분할 투자하기 때문에 평균 매수가격을 낮출 수 있어 수익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투자위험을 줄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은행과 보험사의 연금저축신탁·저축보험의 경우 5000만원까지 보호받지만 연금저축펀드는 예금자보호 대상이 아니다.

시중은행에 관련 상품도 여러 개가 출시돼 있다. 국민은행은 2004년 5월부터 ‘KB실버웰빙 연금신탁’을 판매하고 있다. 매년 납입금액의 100% 범위 내에서 최고 300만원까지 소득공제가 가능해 매월 33만3000원씩 저축할 경우 최고 400만원을 소득공제 받을 수 있다.

신한은행의 연금신탁은 안정형(주식비중 10% 이내), 채권형 두 가지 종류가 있다. 1만원 이상 분기당 300만원까지 적립할 수 있다. 적립액의 100%를 소득공제 받을 수 있다.

◆퇴직연금 활용방안이 기본

퇴직연금은 기업이 근로자 재직기간 중 퇴직금을 외부의 금융회사에 적립하고, 이를 사용자(이하 기업) 또는 근로자의 지시에 따라 운용해 근로자가 퇴직할 때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받도록 하는 ‘기업복지제도’다.

퇴직연금은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구분된다. DB형은 기존의 퇴직금제도와 유사한 부분이 적지 않다. 근로자가 회사를 그만 두는 시점의 임금과 근로기간을 기준으로 퇴직급여를 확정하는 제도다. 반면 DC형은 매년 기업이 부담하는 금액은 확정돼 있지만, 적립금의 운용성과에 따라 근로자의 퇴직급여액이 달라진다. DC형이 DB형보다 위험부담이 있지만 투자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도 생기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DB는 기업이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퇴직급여의 일정 부분(현행 60%) 이상을 금융회사에 예치해 놓고, 기업은 이 자산을 퇴직연금상품으로 운용한다. 근로자들이 퇴직 때 지급받는 금액은 이 자산의 운용 결과와 상관없이 퇴직금과 같은 확정된 금액이 된다. 기업이 운용의 손실을 안는 것이다.

DC는 근로자가 퇴직급여 자산운용의 주체가 된다. 기업의 부담금이 사전에 결정되고, 적립된 부담금을 가입 근로자가 스스로 운용해 실적에 따라 퇴직급여가 바뀐다. DC에서 기업은 매년 근로자 개인별로 연봉의 12분의 1 이상을 부담금으로 납입하고 근로자들은 이 부담금을 직접 운용한다. 즉 사용자의 책무는 매년 부담금을 납입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임금상승률이 높은 기업이라면 DB가 유리하며 투자수익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면 DC가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IRP상품 봇물…연400만원까지 소득공제도

IRP는 한마디로 퇴직금을 관리 운용하는 전용통장이라고 볼 수 있다. 예전엔 퇴직금을 받을 때 월급통장으로 받았다면 이제 무조건 IRP를 통해 퇴직금을 받게 된다. 자신이 선택한 퇴직연금 종류가 DB든 DC든 IRP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직이나 중도 퇴직할 경우에도 IRP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개인이 IRP를 개설한 뒤 회사에 통보하면 회사에서 퇴직금을 해당 계좌로 넣어주는 식이다. 만약 이직·퇴직 직원에게 IRP가 없다면 회사가 임의로 IRP를 개설해준다. IRP는 은행·증권사·보험사 등 57개 금융회사에 찾아가 자신의 명의로 만들면 된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도 저마다 다른 금융회사를 선택할 수 있다. 금융회사에 따라 상품이나 수수료가 다양하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야 한다. 연간 불입 한도는 1200만원(분기당 300만원)이다.IRP에 가입하면 과세이연과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지기도 한다. IRP에 가입해 퇴직금을 55세까지 운용하면 연금 수령 시점까지 퇴직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내야 할 세금이 원금에 더해져 운용돼 최종 수익이 커지는 복리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연금저축 등 개인연금 납입분과 합산, 연 4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의무 가입기간이 없고 해지에 따른 추징세가 없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IRP의 장점이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