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수공제회의 교수들 퇴직자금 횡령 사건의 파장이 커져가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을 일으킨 공제회의 총괄이사 이모씨(60)가 고이율을 미끼로 전국의 교수 수천명으로부터 3000억여원을 예·적금 형태로 받아 이 중 수백억원을 빼돌렸지만 공제회는 10여년간 정부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수원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에 따르면 이씨는 2000년 1월부터 최근까지 전국 전임강사 이상 교수 및 배우자 등 5000여명에게서 예·적금을 받는 등 불법 금융행위를 한 혐의로 지난달 28일 구속됐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측은 3일 “전국교수공제회는 교수들의 임의단체이며, 금융회사가 아니어서 허가 등 감독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2010년 2월 제보를 입수해 경찰에 통보했다”면서도 “유사수신행위를 감독하는 정부기관은 없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역시 “교과부 승인단체가 아닌 사설단체”라며 관리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그러나 “몇 년 전 대구를 기반으로 한 모 교원공제회 대표이사가 유사수신행위를 하다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적은 있다”고 전했다.

교직원을 상대로 한 불법사기단체가 과거에도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 관청은 ‘나몰라라’며 뒷짐을 지고 있다가 수천명의 피해자를 양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총괄이사 이씨가 빼돌린 공금규모도 당초 500억원보다 더 늘어나 7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어 (이씨의) 횡령액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피해 회복에 초점을 둔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검찰 조사에서 공제회에 남아 있는 자산은 1000억원에 불과해 이씨가 빼돌린 것으로 잠정 확인된 700억원 이외에 1300억원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가 횡령한 공금으로 서울·경기 수도권 내 빌딩과 건물 등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며 “주로 자신 명의로 매입했으며 사라진 1300억원 중 일부가 부동산 투자에 유용됐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씨 가족들에 대한 수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검찰 등에 따르면 이씨는 전직 대학 총장과 학장 등을 임원으로 차례차례 끌어들였다. 공제회 회장은 전 H대 총장인 주모씨(79)가, 부회장은 지방대인 J대의 전 총장 A씨와 K대 전 학장인 B씨가 맡고 있다. 또 이사직은 서울 소재 유명 대학의 간호대학장인 C씨 등이 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가 대학 총장을 지낸 사람을 명목상 회장으로 추대하는 등 대학 관계자를 전면에 내세워 예금 유치에 활용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씨가 횡령한 금액 중 일부가 임원들에게 흘러들어갔는지 여부도 조사할 계획이다.

이씨는 앞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개인 명의 부동산 4건(236억원)과 예금 48억원을 공제회에 반납했다.

검찰 관계자는 “공제회 회원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이 3000억여원에 달하기 때문에 이씨의 재산 확보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중銀 보다 2배 금리” 유혹…50대 지방대 교수들 피해 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노후 대비와 목돈 마련 등을 위해 일정 금액을 맡기면 높은 금리를 주겠다며 전·현직 교수들을 유혹해 회원으로 모집했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자산관리사 등 전문가를 따로 두지 않았으며, 독단적으로 공금을 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장기 저축 형태로 매달 일정 금액을 납입하면 정년퇴직 시 원금에 20% 이상 이자를 붙여 돌려주고, 5000만~1억5000만원 정기예금을 1~3년간 납입하면 시중 은행보다 두 배가량 높은 연리 7.47~9.35%의 이자를 지급하겠다며 홍보해왔다. 또 회원들을 상대로 이메일 등을 보내 “(공제회의) 보유자산이 4조원에 달
한다. 10년째 흑자를 내고 있는, 교수들의 복리·후생을 전담하는 기관”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의 말을 듣고 회원이 된 교수들 중에는 50대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고 있으며, 지방대 교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며 “이들은 교단에서 물러난 뒤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해 회원에 가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