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부산의 한 리조트에서 열린 포럼에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올해 처음 열린 ‘2012 형사법관 포럼’에 판사 경력 4~5년차부터 20년차 이상까지 전국 법원 형사재판 담당 판사 38명이 모여 기업 총수의 양형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기 때문이다.

비공개 토론에서 판사들 대부분은 ‘과거에는 기업 총수의 경제 기여도를 인정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을지 몰라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져 재계에 파장이 예상된다.

이번 포럼의 논의가 당장 재판에 적용될 기준이 되는 건 아니지만 법원 내부 기류를 드러냈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따라서 1심 심리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등 기업인들의 재판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박형준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이날 주제발표에서 “소위 10대 재벌그룹 회장들의 사건에서 대부분 집행유예가 선고된 결과 사회적 비판이 제기되고 있고 사법 불신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며 “기업인 범죄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정찰제 판결’이라는 조롱이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비공개로 진행된 토론에서 판사들은 기업인의 사회 기여도 등을 양형에 반영해야 하는지 여부를 놓고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양형에 반영해야 한다” “경제에 끼치는 영향까지 법원이 고려할 사안은 아니다” 등 다양한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를 맡은 이원범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이제 법원은 법적 판단을 하고 경제적 파급효과는 경제 영역에 맡기는 양형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말했다.

토론에 참여한 한 판사는 “주류 의견은 재벌 총수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던 과거와는 달리, 법적판단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판사들은 또 경제·금융범죄에서 피해자의 피해 사실보다 가해자의 입장에 치우친 양형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에도 동의했다. 경제·금융범죄에 따라 주주 등이 간접적이고 잠재적인 피해를 본 점은 재판 과정에서 부각되기 어려운 반면 악화된 건강상태 등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은 잘 드러나 경제·금융범죄자들에게 다소 유리한 양형이 있었다는 반성이다.

이외에도 판사들은 음주 폭력, 식품 범죄, 양형기준 준수, 구속 등에 대해 논의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건의 사회적 의미 및 영향력을 사전에 충분히 고려해 사건을 처리하려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시대의 일시적 조류에 편승해 재판 독립이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부산=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