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특성을 현실 문제에 적용하는 ‘게임화(gamification)’가 주목받고 있다. 게임은 단순한 놀이로 보이지만 일정한 서사 구조를 가진 문제풀이 활동이기도 하다. 이용자가 재미를 느끼며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점도 게임의 특징이다.

선진 기업들은 이 같은 특성을 경영에 접목해 여러 가지 효과를 얻는다. 게임 인구의 저변이 넓어지고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가 경제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게임화는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게임화가 가장 먼저 나타난 분야는 마케팅과 광고다. 브랜드와 관련된 게임을 개발해 소비자가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제품을 알리고 충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BMW는 ‘미니’ 브랜드의 신차 출시에 맞춰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신차를 경품으로 내건 스마트폰 기반 증강현실 게임 대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이 지도상에 있는 미니를 서로 뺏고 뺏기다가 1주일 뒤 마감시간에 미니를 최종적으로 보유한 사람이 우승하는 방식이다. 이 대회는 스톡홀름 시민 1만명이 참여했을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게임을 통해 소비자가 제품을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나이키는 운동과 게임을 접목했다. 소비자 본인이 뛴 거리를 지도상 위치로 보여주고 다음 목표점을 직접 설정하도록 하는가 하면, 경쟁 그룹을 지정해 누가 더 빨리 목표를 달성하는지를 나타내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닛산은 전기자동차 ‘리프’를 홍보하기 위해 ‘카윙스’라는 게임을 선보였다. 소비자가 가상 공간에서 리프를 운전하면 ‘친환경 운전 등급’이 자동적으로 표시돼 전기차를 효율적으로 운전할 수 있는 요령을 터득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이 마케팅을 위해 선보인 게임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한 사례도 있다. 폭스바겐은 속도위반 벌금으로 기금을 조성한 뒤 규정속도를 지킨 운전자 중 추첨을 통해 상금을 나눠주는 ‘운전자 복권 게임’을 선보였다. 이 게임은 차량 평균 주행속도를 22% 떨어뜨리는 효과를 얻었다.

지식을 창출하고 연구·개발 성과를 높이는 데도 게임을 활용할 수 있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은 일명 3차원 테트리스라고 불리는 ‘폴딧’ 게임을 활용해 아미노산 분자의 사슬 구조와 원숭이 에이즈 바이러스의 효소 구조를 밝혀냈다. 이들의 논문을 실은 과학잡지 ‘네이처’는 저자 명단에 게이머 5만명을 등재시켰다.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연구 성과에 기여한 점을 인정한 것이다.

게임을 단순한 오락으로 치부하던 시대는 지났다. 한국 기업도 경쟁력 제고를 위해 게임화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건강관리 교육 문화 등 정보기술(IT) 융합이 필요한 산업은 게임의 ‘펀(fun)’ 요소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이용자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한국 기업이 이미 전자 산업과 게임 산업에서 확보한 경쟁력을 활용한다면 다양한 IT 융합 산업에서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sh1009.lee@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