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니혼게이자이는 한국 기업이 강해진 것은 위기의식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적이 있다. 5000만명 규모의 내수 시장에만 의존할 수 없어 일찌감치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또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론’도 한국 기업을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한국 기업은 위기에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 그 전략은 ‘현지화’였다. 다양한 고객이 원하는 신제품과 신기술을 발빠르게 내놓은 게 한국식 위기 극복 전략이었던 셈이다.

○어려울수록 대규모 투자

국내 기업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 경기 침체기에 공격적 투자를 감행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 업체들은 움츠리고 있었지만 한국 기업들은 2010년부터 계속 투자를 늘렸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30대 그룹의 올해 총 투자액이 작년 대비 14.3% 증가한 120조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집계했다. 이 가운데 시설투자는 1년 전에 비해 7.7% 늘어난 94조원, 연구·개발(R&D) 투자는 16.9% 증가한 26조4000억원이다.

삼성은 신성장 분야를 선점하기 위해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47조8000억원을 투자한다. 지난해(42조8000억원)보다 12% 늘어난 수치다. 시설투자가 31조원으로 가장 많고 R&D 투자 13조6000억원, 자본투자 3조2000억원이다.

현대차는 올해 투자 목표를 전년보다 15.6% 증가한 14조1000억원으로 정했다. 역시 최대 규모 투자를 단행,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특히 친환경차 등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R&D 투자를 강화할 방침이다.

LG는 올해 R&D 부문에 사상 최대 규모인 4조9000억원을 투자한다. 재도약을 위한 중장기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내실을 다지기 위해 시설투자 등에 총 16조4000억원을 투입한다.

SK는 올해를 ‘글로벌 성장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지난해 9조원대보다 2배가량 늘린 ‘통 큰 투자계획’을 세웠다. 롯데도 역대 최대 규모인 6조7300억원을 투자한다. 작년 4조6000억원에 비해 50% 가까이 증가한 규모다.

GS는 전년보다 약 48% 증가한 3조1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에너지, 유통, 건설 등 주력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내수 기업들은 신제품으로 무장

통신사들은 업계 1위를 지키기 위해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IPTV 시장 선두업체인 KT는 ‘올레TV’를 내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2008년 11월 국내 최초로 IPTV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뒤 콘텐츠 차별화로 36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2009년 8월 위성방송 KT스카이라이프와 함께 결합상품 ‘올레TV스카이라이프(OTS)’도 선보였다.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은 롱텀에볼루션(LTE) 시장을 선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국내 최초로 LTE 서비스를 상용화해 지난 6월까지 가입자 300만명을 확보했다. 미국 버라이즌에 이어 세계 2위 LTE 사업자로 올해 말까지 700만명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금융사들은 특화 상품으로 무장했다. 국민은행은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의 창업이 이어지자 가맹점주를 위한 상품을 내놨다. 산업은행은 고금리 대표 상품 ‘KDB다이렉트’로 고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현대카드와 하나HSBC생명은 각각 스마트폰용 외식정보 애플리케이션과 연금형 종신보험으로 고객 만족을 구현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다양한 절세 상품을 신무기로 내세우고 있으며, 한국투자증권은 적립식 랩을 대표 주자로 키우고 있다.

주류업체들은 맞춤형 상품으로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오비맥주는 카스를 통해 대한민국 대표 맥주로 자리잡았고 하이트진로는 참이슬 소주로 국내 1위 브랜드 지위를 지키고 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