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외부로부터 900여회의 크고 작은 침략을 받았다고 한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교차하는 한반도에서 오래 잘 버텨왔다.

위기(危機)는 위험과 기회를 내포하는 말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은 “오직 위기만이 진짜 변화를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위기가 사람을 긴장시키고 불가능했던 변화를 가능케 한다. 다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느냐에 따라 위기 뒤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국가부도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한국인들은 ‘금모으기’와 근검절약운동을 펼쳤고, 그리스인들은 ‘금사재기’와 재산 해외도피를 했다. 한국인들은 국가부채를 갚기 위해 ‘인내와 단합’을 택했다면, 그리스인들은 복지삭감에 ‘파업과 폭동’으로 대응했다.

한국은 3년여 만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조기 졸업했지만 그리스는 아직도 국가부도 위기에서 헤매고 있다. 세계 각국의 언론들은 그리스 등 유럽국가들이 경제침체에서 벗어나려면 한국의 금모으기 운동과 같은 희생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세계인에게 한국인의 긍정적 아이콘으로 각인된 금모으기 운동은 사실 필자가 차장검사로 근무 중이던 서울지방검찰청이 1997년 12월1일 맨 처음 시작했다. 당시 서울지검이 직원들의 근검절약실천 다짐대회를 준비하던 중 이종왕 형사제1부장이 필자에게 실천방안으로 금모으기를 하면 어떠냐고 건의했다.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고 판단돼 안강민 검사장께 보고하고 금모으기 캠페인을 선언했다. 그 운동은 전국적인 호응을 얻기 시작해 1998년 1월5일부터 주택은행 등 금융기관, 언론사, 기업들이 순차로 참여하자 들불처럼 범국민운동으로 번져 나갔다. 그때 227t의 금이 모였으나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겠다는 연대의식이 중요한 것이다.

2007년 태안 앞바다에 대형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을 때 전국에서 130만여명의 놀라운 자원 봉사자가 찾아와 기름제거 작업을 도운 결과, 최소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수질과 어종의 원상회복이 2년 만에 이뤄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 역시 환경위기가 국민들의 단합을 부른 사례이다.

그런데 요즘 이웃 일본이 아직도 제국주의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고,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이 애플의 손을 들면서 삼성에 10억달러가 넘는 배상책임을 지우는 평결을 한 것도 심상치 않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최근 1주일에 다섯 건이나 발생한 ‘묻지마 살인’, 흉기 난동 사건들이다. 사회 계층 간 갈등에서 비롯된 병리현상이 이런 잔혹한 범죄의 독버섯을 키우는 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그렇지만 수많은 위기의 벼랑 앞에서 긍정적 변화의 기회를 만들어 옳은 길을 선택해온 배달민족의 저력과 지혜를 믿는다. 정부와 국민은 각자의 위치에서 신발끈을 다시 매고 새로운 도전에 슬기롭게 응전해야 할 것이다.

김진환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 zhkim@hmp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