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CN캐나다오픈에서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15ㆍ한국명 고보경)가 사상 최연소로 우승한 이면에 현지 '할아버지 캐디'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대회가 열린 브리티시 컬럼비아(BC)주 코퀴틀람 밴쿠버골프클럽의 원로 회원인 브라이언 알렉산더(63).
그는 골프 애호가이자 이 골프클럽 열성 회원일 뿐 직업 골프 캐디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리디아 고가 세운 새 골프사의 이면에서 숨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회장소인 밴쿠버골프클럽은 그린이 단단하고 빠른데다 굴곡이 심해 선수들이 예민한 신경을 써야 했다.

특히 홀컵 주변의 숨은 경사가 심해 외지 선수들에게는 유달리 까다로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여건에서 리디아 고에게 현지 토박이 알렉산더는 남모르는 '비밀 병기'였던 셈이다.

알렉산더는 밴쿠버골프클럽의 10여년 회원이다.

지난 1911년 개장, 올해로 101년이 된 이 클럽은 회원가입이 까다롭고 자존심이 강하기로 밴쿠버 일대에서 정평이 난 유서깊은 골프장이다.

BC주에서는 두 번째로 오래된 골프장으로도 이름이 알려졌다.

알렉산더가 리디아 고의 골프백을 메게 된 것은 사실 우연에 가깝다.

리디아 고와 처음 연락이 닿은 것은 대회 일주일 전인 지난 22일.
평소 딸의 캐디를 도맡아 오던 그의 엄마가 대회 장소에 밝은 현지 캐디에 대해 골프장에 문의를 해 왔다고 한다.

골프장 측은 자원봉사로 캐디를 지원해 놓은 상태였던 알렉산더에게 연락했고 양측의 만남으로 인연이 만들어졌다.

LPGA 대회 개최지로 선정된 이후 이 골프 클럽은 물론 지역 사회에서는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자원봉사자를 대대적으로 모집했다.

이때 알렉산더는 자원봉사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로 현지 캐디를 지원했다고 한다.

알렉산더는 "골프클럽에서 불과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살고 있었으니, 연락을 받고 당장 달려간 것은 당연했다"며 "리디아 고와 엄마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즉석에서 캐디로 선택됐다"고 말했다.

리디아 고의 우승이 확정된 후 18번 홀 그린 뒤에서 만난 그는 "리디아의 우승은 나의 크나큰 즐거움이자 영광"이라고 감격했다.

나흘간 리디아 고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성숙한 선수"라며 "경기의 긴장이 가중되는 상황일수록 더 침착한 모습을 보이더라"고 전했다.

또 리디아 고가 "야심이 대단한 선수"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는 "내 나이가 리디아의 4배나 된다"며 "손녀뻘 선수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우승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알렉산더의 본업은 부동산 개발업이다.

하지만 10년 넘게 이 골프클럽에서 수도 없이 플레이를 하다보니 골프장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없는 '빠꼼이'다.

실제로 라운딩 내내 리디아 고와 캐디 알렉산더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페어웨이에서, 그린에서 묻고 대답하는 장면이 홀마다 이어졌다.

리디아 고가 그를 만난 것은 기대 밖의 행운이라고 할 만했다.

알렉산더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운동을 열심히 해왔지만 캐디 한번 하고 이처럼 유명해질 줄은 몰랐다"며 "사실 이 일은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리디아가 샷을 할 때마다 매번 조마조마했다"고 술회하면서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것 같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밴쿠버연합뉴스) 조재용 통신원 jaey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