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 따뜻해 '고속성장'…고기압 빠진 틈타 내습
'볼라벤' 고온수역 지나며 에너지 끌어모아

1995년 '재니스(JANIS)', 2002년 '루사(RUSA)', 2003년 '매미(MAEMI)', 2010년 '곤파스(KOMPASU)'….
역대 우리나라에 가공할 위력을 행사한 이들 태풍은 모두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우리나라를 찾아왔다.

27일 현재 우리나라를 향해 북상중인 제15호 태풍 '볼라벤(BOLAVEN)'도 이들 '힘센' 가을태풍의 목록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

가을태풍이 이렇게 위력적인 이유는 이맘때 태풍이 우리나라에 찾아오기 좋은 기상조건이 만들어지는데다 태풍 자체가 품는 에너지도 많기 때문이다.

태풍은 북서쪽 태평양에서 발생해 북태평양 고기압의 중심을 오른쪽으로 바라보면서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타고 북상한다.

그래서 북태평양 고기압의 위치가 태풍의 이동경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해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북태평양 고기압은 8월 중순부터 서서히 우리나라에서 물러나기 시작해 8월말에서 9월초 사이에는 한반도가 그 둘레에 걸치게 된다.

태풍이 우리나라를 방문하기 좋은 '태풍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10월에는 태풍이 일본 남쪽 해상 멀리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볼라벤'에 앞서 올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태풍 '카눈(KHANUN)'과 '담레이(DAMREY)' 역시 북태평양 고기압의 위치에 따라 이동경로가 정해졌다.

'카눈'은 장마철 우리나라 상공에서 북태평양 고기압과 오호츠크해 고기압이 세력 다툼을 벌이는 틈을 타 수도권을 관통했다.

반면 '담레이'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막강한 세력을 유지한 채 우리나라를 완전히 뒤덮은 탓에 북상하지 못하고 제주도 남쪽 바다를 지나 중국으로 건너가 소멸했다.

가을에 발생하는 태풍은 태생적으로도 여름철 태풍보다 강력하게 성장할 가능성이 더 크다.

태풍은 고온의 바다가 내뿜는 수증기를 에너지원으로 삼는데 태풍 발생 수역의 해수면 온도가 여름 내내 높아지다가 8월말에서 9월초 사이에 최고치에 이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제주도 남쪽 먼바다를 비롯해 일본 오키나와 근처의 수온이 27∼29도로 평년보다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볼라벤'은 고위도로 이동하면서도 좀처럼 힘을 잃지 않고 있다.

김태룡 기상청 국가태풍센터장은 "'볼라벤'이 발생한 필리핀 동쪽 해역의 수온이 30도에 이를 정도로 높았고 바다의 열용량도 매우 컸다"며 "고온의 바다 위에서 서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동안 에너지를 계속 끌어모아 매우 강한 태풍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te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