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기상 여건과 작황이 좋아 곡물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미국 가뭄 얘기가 나오더니 투기세력까지 움직이면서 지난달부터 시장이 돌변했어요. 요즘엔 공개 입찰이 붙으면 식품업체 간 ‘물량부터 확보하자’며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요.”(정태원 당업·제분팀 부장)

서울 쌍림동 CJ제일제당 본사 6층 곡물구매전략실은 지난달부터 24시간 비상이 걸렸다. 옥수수 콩 밀 등 주요 곡물의 국제 가격이 불과 한두 달 만에 최고 50% 이상 급등한 탓이다. 24일 기자가 찾은 이 사무실은 현물·선물거래를 내기 전 시황을 점검하는 직원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연간 10억달러 곡물 구매

곡물구매전략실은 설탕, 밀가루, 식용유, 사료 등 수백종의 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최대 식품업체 CJ제일제당의 원료 구매 전략을 책임지는 부서다. 국내에 24명, 해외 주재원 13명 등 총 37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원당 58만t, 밀 55만t, 콩 62만t, 옥수수 50만 등을 미국 호주 태국 캐나다 등에서 사들였다. 총 곡물 구입액은 10억달러(1조1340억원)에 달했다.

윤대진 곡물전략팀 과장은 “올해 구입액은 연말까지 얼마나 구입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지난해보다 적어도 10~20%는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안에 곡물가격이 떨어지긴 어려워 보인다”며 “내년 1분기 남미 곡물이 잘 나와야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곳 직원들은 오전 8시께 출근해 국내외에서 쏟아진 50여건의 시장 리포트를 분석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일일·주간 단위의 시황분석과 현물·선물거래 외에도 화상회의, 해외 곡물업체 미팅 등으로 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간다.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는 당직자들이 미국 시카고·뉴욕과 브라질 상파울루 등 해외시장 상황을 모니터링한다.

이들은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에 단체 채팅방을 개설, 회사를 떠나서도 24시간 시황을 공유한다. 직원들의 스마트폰에는 새벽에 해외 주재원들이 쏟아내는 현지 시장상황으로 대화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정 부장은 “새벽에 쉴 새 없이 알림 메시지가 울리면 잠결에도 곡물시세가 또 어떻게 변동했을지 긴장하게 된다” 고 말했다.

○예측모델로 헤지펀드와 ‘맞짱’

곡물구매전략실의 판단은 식품, 바이오, 사료 등 회사 전 부문 실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직원들이 느끼는 부담감도 크다. 시장 상황을 예측하는 역량에 따라 식품업체 간에도 연간 최대 수십억원의 구매액 차이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성낙기 제분팀 대리는 “해외 시장에서 충격적인 뉴스가 터지면 저녁에 회식을 하다가도 사무실로 뛰어와 밤새 리포트를 작성한다”고 말했다.

올 들어서는 자체적으로 곡물 가격 예측모델을 만들어 가동하고 있다. 국제시장의 수요·공급량과 기상 상황, 투기세력의 자금 움직임 등을 종합한 것으로 현재 콩 부문에 시범 적용하며 다듬고 있다. 올해 안에 원당, 옥수수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곡물구매전략실을 총괄하는 박성조 부사장은 “헤지펀드에는 식품업계와 금융계 출신의 전문가가 대거 포진해 있고 자금 흐름도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며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의 자체적인 분석틀을 고도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