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 월급 130위안→ 2500위안…가공무역 韓기업 퇴출 위기
칭다오 월급 130위안→ 2500위안…가공무역 韓기업 퇴출 위기
액세서리 업체인 다산은 1990년 칭다오(靑島)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 이 회사의 중국 근로자 1인 월급은 130위안(약 1만5000원)이었다. 한국 근로자의 30분의 1에 불과했다. 혜택도 많았다. 토지를 싼값에 불하받았고 세금도 감면됐다. 공장부지를 정할 때 공무원들이 지도를 놓고 원하는 곳을 찍으라고 할 정도였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다산 근로자들의 월급은 2500위안으로 올랐다. 세금 혜택도 사라져 그동안 내지 않던 부가세 13%를 내야 한다. 이 회사 임성완 관리이사는 “이달에 베트남에 제2공장을 짓기로 했다”며 “언제인지 모르지만 칭다오 공장을 폐쇄하고 회사 전체가 베트남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 800여개에 달했던 칭다오의 한국 액세서리 업체는 지금 약 200개로 줄었다.

ADVERTISEMENT

칭다오에서 내륙으로 1900㎞ 떨어진 충칭(重慶) 양장신구(兩江新區). 내륙의 홍콩으로 불리는 이곳은 이미 세계 500대 기업 중 HP 포드 등 200개 기업이 진출할 정도로 다국적 기업의 각축장으로 변해 있었다. 곳곳에 크레인이 서 있고, 셀 수 없이 많은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양장신구는 한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지난해 8.1㎢의 한국 기업 전용단지를 조성했다. 그러나 1년여가 지난 지금 이곳에 공장을 짓기로 한 곳은 SK가 유일하다.

◆길 잃은 한국 기업

ADVERTISEMENT

차이나 2.0시대에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길을 잃었다. 중국을 가공무역기지로 활용하던 노동집약적인 전통 제조업은 수출경쟁력을 상실했다. 방향을 돌려 내수를 추진하려 해도 유통망을 뚫지 못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베이징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카라상무유한공사의 이춘우 사장은 “중국의 유통망은 관시(關係)로 맺어져 있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는 한국 기업이 진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첨단기술을 가진 업체들은 특별한 혜택이 없는 상황에서 기술 유출 등을 우려해 현지 진출에 소극적이다. 쉬밍(徐鳴) 양장신구 관리위원회 주임은 “한국은 내수시장이 작아 기업들이 중국에 올 수밖에 없다”며 “전자정보 자동차 장비제조업종의 기업들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차의경 LG화학 난징법인 수석 부장은 “중국은 임금도 올랐지만 기술 유출 우려가 있어 첨단 기술을 직접 옮겨오기에는 적합치 않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LG화학은 중국 편광판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지만 난징에 있는 공장은 반제품을 수입해 가공 생산하는 일종의 조립공장 역할만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대중국 투자도 주춤하고 있다. 한국은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중국에 2120건 52억6000만달러의 투자를 했다. 그러나 2009년 735건, 21억1000만달러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828건, 35억7000만달러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중국에서 한국 기업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상황은 양국 간 무역 구조의 변화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가공수출에 필요한 중간재와 자본재 중심으로 이뤄졌다. 반제품이나 부품을 수출해 현지에서 조립한 뒤 제3국에 수출하는 모델이다. 한국의 대중 가공 수출은 지난해 전체 수출의 48.9%로 일본(33.4%) 미국(17.9%)에 비해 높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수출은 점점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은 산업구조 고도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가공수입 비중을 줄이고 있다. 2007년까지 40%를 넘었던 중국의 가공수입 비중은 지난해 26.9%까지 감소했다.

ADVERTISEMENT

◆새 연결고리를 찾아야

지난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 1위 품목은 평판디스플레이다. 전체 수출의 15.1%나 된다. 그러나 중국 업체들의 반격도 거세다. 국영기업 BOE는 현재 안후이성 허페이(合肥)에 8세대 디스플레이 공장을, 네이멍구 오르도스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공장을 짓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공장건설 비용을 BOE가 아닌 해당 지방정부에서 댄다는 점이다. BOE 협력업체인 STA의 박범홍 사장은 “디스플레이 기술력이 한국에 비해 떨어진다고 하지만 중국 업체의 배후에는 중국 정부가 있다”며 “중국은 첨단산업 분야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산업구조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차세대 주력 산업을 7대 전략적 신흥산업으로 정했다. 대대적인 재정 금융 지원 방안도 마련 중이다. 중국은 이들 사업의 비중을 2015년 국내총생산(GDP)의 8%, 2020년엔 15%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7대 사업은 △에너지 절약 및 환경보호 △신에너지 △차세대 정보기술 △신에너지 자동차 △신소재 △바이오 △첨단장비 제조업이다. 한국의 21세기 먹거리인 7대 신성장동력 사업과 대부분 일치한다.

조영삼 산업연구원 베이징사무소장은 “중국이 이들 분야에서 선진 기술을 보유한 일본 독일 등과 협력할 경우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며 “한국이 잘하고 중국이 필요로 하는 부문을 찾아 협업 방안을 모색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한진 KOTRA 중국사업단 부장은 “최근 중국의 수입 수요는 부품보다는 소재 위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며 “고부가가치 소재 개발에 노력하고 새로운 밸류체인에 맞는 한·중 산업 간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태완 특파원(베이징·충칭) 이정호 기자(상하이·우한) 노경목 기자(칭다오·창춘·훈춘)

한국경제·LG경제연구원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