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보수 공화당과 진보 민주당의 이념 및 가치 차이는 낙태 등 사회적 이슈에서 확연히 나타나지만 재정·감세·복지 등 경제문제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의 공화당은 보수, 민주당은 진보세력을 대변한다. 반면 한국은 표 앞에 보수의 목소리가 실종됐다.

◆재정·세제 너무 다른 한·미 대선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을 푸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공화·민주당 간의 논쟁은 대선 과정에서도 치열하다. 경기 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고, 중앙은행(Fed)의 추가 양적 완화가 시급하다는 것이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대통령)의 논리다. 여기에 맞서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는 재정 확대가 오히려 민간 투자를 위축시키고 자생력을 죽여 성장을 막는다는 논리로 반대한다.

재정적자 해법에 대해서도 양당 간 입장차이가 뚜렷하다. 민주당은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경기부양을 추진해야 경기가 회복되고 조세수입이 증가해 적자축소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인 반면 공화당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지출을 삭감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한국 선거는 딴판이다. 재정 정책이 경기에 가져오는 효과를 놓고 제대로 된 토론이 벌어진 적이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민생경제’를 살리자는 구호를 내세우며 ‘돈 풀기’ 경쟁을 벌이는 양상이다.

미국에서 세금은 확실히 계급전쟁이다. 부자증세를 놓고 역사적으로 보수 및 사회 기득권층을 대변해온 공화당과 약자층의 지지기반이 두터운 민주당은 치열한 찬반 논쟁을 벌이고 있다. ‘버핏세’(슈퍼부자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매기는 것)를 둘러싼 양당 간의 싸움이 대표적이다. 소득세율 조정을 둘러싸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두 정당의 기싸움 역시 치열하다. 부시 정부 시절, 최고 소득 구간 세율을 39.6%에서 35%로 낮추면서 시한을 2012년 말로 설정했는데, 공화당은 감세를 연장하자는 주장이고, 민주당은 연소득 25만달러 이상은 배제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야 할 것 없이 너도나도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를 외친다. 3억원·38%로 돼 있는 소득세율 최고 구간과 세율을 더 높이고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美는 가치, 한국은 이미지 싸움

미국 유권자 중 감세를 지지하고 낙태·동성결혼·총기사용 규제에 반대한다면 11월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뚜렷한 이념과 사회적 이슈가 미국 대선을 달군다. 12월 한국 대선을 앞두고 이런 이념과 가치에 대한 질문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남북문제를 고리로 한 ‘좌빨’(좌파 빨갱이)과 ‘수꼴’(수구꼴통)을 나누는 ‘색깔’ 논쟁이 유권자를 잡고 있다.

김근식 경남대 정외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가 갈리는 첨예한 전선이 남북관계에 집중돼 있다”며 “한국전쟁 자체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 이념 전쟁이었기 때문에 북한문제에 이념갈등이 응축돼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성수 한양대 정외과 교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면 친북주의자, 찬성하면 친미주의자로 나뉜다”며 “정치권은 편가르기 정치의 대표적인 수단으로 이념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종태/허란 기자/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