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국어를 가르쳐주신 은사를 30여년 만에 찾아뵈었다. 선생님은 정년퇴임 후 고향인 경북 포항시 죽장면에 내려가 벌을 치고 농사를 짓고 계셨다. 일흔이란 연세가 무색하게 건강하고 정정하셨다.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찬란하고 푸른 별빛들, 서울에서는 보지 못할 휘황한 여름밤을 머리에 이고 선생님 댁 앞 수령 500년짜리 장대한 느티나무 정자에서 늦도록 정담을 나누노라니 새삼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들뜬 기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선생님은 벌도 치지만 산야초효소도 만들고, 장뇌삼도 키우고, 직접 콩 농사를 지어 된장도 담그신다고 했다. 사별한 사모님이 여러 해 암 투병을 했다니 아마도 병구완을 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그쪽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신 모양이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하는 게 음식이 아닌가. 나도 작년에 수술을 받은 뒤 부쩍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아졌다.

우리 음식에 바탕이 되는 젓갈은 하나같이 비닐에 싸고 시뻘건 플라스틱 통에 담아 토굴이나 땅속에 몇 년씩 보관한다. 장아찌, 김치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짜디짠 염장 음식을 싼 공업용 비닐에서 환경호르몬이 얼마나 녹아나오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TV에 소개하는 세칭 ‘맛집’에서는 펄펄 끓는 국물에 플라스틱 바가지를 예사로 집어넣는다. 눌어붙거나 탄 플라스틱 주걱을 자랑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묵이나 두부를 만드는 곳 역시 뜨거운 재료를 플라스틱 용기에 그대로 부어서 모양을 낸다.

답답한 것은 그렇게 식품을 취급해도 규제하는 곳이 없고, 관리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알루미늄 은박지에 음식을 놓고 불판에서 익혀 먹는 식당도 부지기수다. 은박지로 감자나 고구마를 싸서 아예 불속에 던져 넣기도 한다. 오래 사용한 비닐장판 위에서 천일염을 만들고, 식당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도 염장음식을 플라스틱 통에 넣어 보관한다. 화학조미료나 잔반 재사용, 비위생적인 중국 제조식품은 논외로 치자. 음식세계화란 구호가 아무리 거창해도 젓갈과 식기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말짱 공염불이다. 우리나라처럼 식당이 많고, 너도나도 음식을 만들어 팔 수 있고, 외식문화가 갈수록 성업·번창하는 곳이라면 입법·사법·행정부가 이것부터 시급히 규제하고 관리해야 마땅하다. 국가에서 젓갈과 식기만 제대로 관리해도 병원을 가득 채운 그 수많은 아픈 사람 숫자가 한결 줄어들지 않을까?

“작년에 토종벌이 전국적으로 몰살을 해버렸지.” 전염병 때문이지만 지구 온난화가 문제라는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지금 우리나라 백화점에서 비싸게 팔리는 꿀은 뉴질랜드산이 주종을 이룬다. 그들이 꿀을 상품화해 영양성분에 따른 등급표시제로 소비자와 생산자 간에 신뢰를 구축하고 있는 데 반해 필경 더 좋을 것 같은 우리 토종꿀은 그야말로 뒤죽박죽, 중구난방이다. 그 사이에서 엉터리 불량업자만 이득을 본다. 산야초효소는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것을 포장만 바꿔 일본 백화점에서 열 배 가격에 되판다고 한다.

“된장 조금하고 꿀 조금 넣었네. 된장은 장이 맛있다고 소문난 종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배워서 만들었으니 먹을 만할 게야. 편의상 플라스틱 통에 담았지만 집에 가거든 유리나 도자기 그릇에 옮겨놓고 드시게.”

선생님은 오랜만에 찾아온 제자가 수술한 이야기를 듣고 폐에 좋다며 한 단지에 수십만 원 하는 귀한 토종꿀과 손수 담근 된장을 조금 나눠주셨다. 집으로 돌아와 장맛을 본 나는 그날부터 사나흘 동안 한 끼도 빠짐없이 된장찌개만 끓여 먹었다. 풋고추와 오이를 깎아서 된장에 찍어 먹으니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된장 하나로 밥 먹는다’는 옛말이 실감났다. 미식가로 자처하던 내가 삼시 세 끼를 그렇게 먹고도 밤에 자려고 누워 된장만 떠올리면 입에 침이 고였다.

“선생님, 된장이 정말로 맛있습니다. 이 된장 담그는 비법을 저한테도 좀 가르쳐주세요!”

“허허, 그래? 그렇다면 가르쳐줘야지. 내년 1, 2월에 기별할 테니 내려오게나.”

그 옛날 국어를 가르쳐주었듯이, 선생님은 이제 내게 우리 고유의 입맛과 그것을 지켜가는 비법을 가르쳐주실 모양이다.

김정산 < 소설가 jsan1019@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