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4일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이 공포됨에 따라 2015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도가 시행될 예정이다. 현재는 구체적인 제도 운영 방안을 명시한 시행령이 입법 예고된 상태다.

한국은 이미 배출권거래제와 유사한 온실가스·에너지목표관리제를 운영 중이다. 기후변화 국제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주요국들은 자국 산업의 국제 경쟁력 보호를 위해 배출권거래제법 도입을 포기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이런 점을 들어 산업계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2009년 11월 한국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 배출 전망치(BAU) 대비 30% 감축하겠다는 자발적 목표를 국제사회에 공표했다. 1990년 이후 지난 15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이 두 배 증가한 점을 감안한다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뤄야 하는 우리로서는 대단히 도전적인 감축목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도입하는 것이 배출권거래제다. 배출권거래제는 정부가 기업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해주고 이와 대비해 남거나 모자라는 배출권(CER)은 다른 기업에 팔거나 사오도록 하는 ‘시장 기반’의 규제 정책이다. 따라서 배출권거래 시장이 얼마나 잘 형성되느냐가 이 제도의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이다.

배출권 100% 무상할당해도 설비 등 4조2000억 비용 발생

그러나 선도적으로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고 운영해 온 유럽연합(EU)의 배출권 거래 시장만 보더라도 경기변동에 따라 배출권 가격이 급격히 등락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경제위기에 따른 배출권 과잉현상으로 배출권 가격이 t당 3유로 이하까지 내려갔다. 결국 EU는 내년부터 2020년까지 시행 예정이었던 3단계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연기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배출권거래제 도입의 모델 중 하나로 항상 언급돼 왔던 미국의 시카고 거래소는 거래량이 없어 문을 닫았다.

이런 배출권 거래시장의 불확실성과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들은 자국 산업의 국제경쟁력 저하 등을 우려해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8%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정례 기자회견에서 “배출권거래제가 기후변화 해결의 유일한 방안은 아니다”며 도입 철회 의사를 밝혔다.

일본도 각료회의를 통해 2013년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기로 했던 기존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오랜 기간 배출권거래제를 연구해 온 일본이 자국 산업계의 문제제기를 적극 수용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과 세계 3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인도도 유사한 이유로 배출권거래제 추진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산업계 공동조사 결과에 따르면 100% 무상할당을 한다 하더라도 정부가 기업에 부여한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설비개선·도입 등으로 약 4조20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이산화탄소 배출권리가 100% 유상으로 전환된다면 배출권 구매비용이 더해져 산업계의 비용부담은 최대 약 14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배출권거래제가 어느 정도 정착됐다는 EU에서조차 유럽철강연맹(EUROFER)은 100% 무상할당 등 산업계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을 경우 국제경쟁력이 크게 악화될 것을 우려해 배출권거래제 정책에 반대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또 유럽노조연맹(ETUC) 역시 배출권거래제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원칙과 이를 위해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는 것에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 범지구적 환경문제인 기후변화 해결에 우리나라가 선도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비용 최소화가 곧 경쟁력인 기업환경에서 배출권거래제 도입으로 인한 비용부담은 국내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이나 외국인 투자 기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투자와 고용 여건이 악화될 수 있다.

시카고거래소 거래량 없어 문닫아…배출량 많은 中·인도도 의지 없어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배출권거래제 시행이 결정된 만큼, 신중하고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제조업 중심의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한국형 배출권거래제 설계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의무감축국이 아닌 상황에서 감축의무를 지닌 EU를 무작정 따라하기보다는 온실가스 감축 기술 개발 지원에 초점을 맞춰 산업육성 차원의 맞춤식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국내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저하되지 않도록 산업의 지원 기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제도시행 초기인 1, 2기(2015~2020년)에는 배출권을 100% 무상할당하고, 3기 이후에는 국제동향, 산업경쟁력을 고려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뿐 아니라 녹색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규제와 경제 촉진을 담당하고 있는 부처의 역할을 적절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온실가스·에너지목표관리제와 배출권거래제 간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석유, 석탄 등 화석에너지 사용에 따른 직접배출량과 전기, 스팀 사용에 따른 간접배출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직접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연료전환 등 다양한 방법을 고려할 수 있지만 간접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전기를 절약하는 방법밖에 없어 결국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간접배출이 주를 이루는 기업들은 목표관리제하에서 전기 절약에 대한 적정한 목표를 부여하고 관리하는 것이 효과적일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전기의 생산과 사용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중복 계산되는 문제도 해결 가능하다.

국내 기업들은 이미 에너지효율 향상 및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왔다. 그 결과 대부분의 업종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효율을 갖추고 있어 온실가스 추가 감축 여력이 낮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도입하려는 배출권거래제도는 국내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고 지속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광림 <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 / 전략조정실장·선임연구위원 >

△단국대 전자공학 △KAIST 석사 △건국대 공학박사 △한국기후변화학회 상임이사 △한국환경경영학회 상임이사 △한국전과정평가학회 사업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