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을 어느 한 분야에서라도 세계 최고로 만들겠다는 기업인으로서의 마지막 꿈을 멈추지 않을 수 있도록, 그룹과 국민 대한민국을 위해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달 16일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호소한 ‘기회’는 결국 주어지지 않았다.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김 회장이 법정구속되면서 올해 창립 60주년인 한화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김 회장은 만 29세 때인 1981년 회장에 취임한 뒤 다섯 번의 검찰 조사를 받았다. 구치소에 수감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주요 대기업 총수로서는 첫 법정구속이다.

검찰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8월 김 회장은 취임 30주년을 기념식 없이 조용히 넘겼다. 환갑을 맞은 올해 생일 전날(2월2일)엔 검찰이 징역 9년에 벌금 1500억원을 구형했다. 그리고 차남을 때린 술집 종업원을 보복 폭행한 혐의로 2007년 구속돼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은 지 4년 만에 다시 법정구속됐다. 오는 10월9일 창립 60주년 기념일도 옥중에서 맞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김 회장이 이끌어온 지난 31년간 한화는 눈부신 성장을 했다. 주특기는 과감한 인수·합병(M&A)과 신속한 의사 결정이었다. 취임 1년 만에 2차 석유화학 파동으로 경영난에 빠진 한양화학(현 한화석유화학)을 인수해 석유화학을 그룹의 성장동력으로 키웠다. 2002년엔 대한생명을 M&A해 그룹의 양대 축으로 기반을 닦았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땐 32개였던 계열사를 15개로 줄이는 구조조정으로 정면 돌파했다. 회장 취임 당시 1조원의 매출을 40배로 늘렸고 10대 그룹 반열에 올라섰다.

강력한 추진력과 과감한 결단력은 때로는 ‘독’이 되기도 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김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누구에게도 제대로 경영을 배우지 못한 채 의지할 곳 없이 모든 사안을 일일이 챙겨왔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젊은 총수로서 부담과 책임감이 컸던 만큼 모든 일을 전면에 나서 직접 지휘했다. 이런 가운데 1993년 외화 밀반출 사건이 터져 사법부와의 악연이 시작됐고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지원, 2005년엔 대한생명 인수 비리 의혹 등으로 잇달아 검찰 조사를 받았다.

김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창립 60주년을 맞아 지난날의 위업을 뛰어넘어 제2의 도약을 가늠할 중대한 시험대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신규 프로젝트뿐 아니라 진행 중인 사업은 ‘법의 칼날’ 위에서 일단 정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다. 여야의 경제민주화 경쟁 속에서 첫 희생자가 됐다는 동정론도 있다.

김 회장은 선고공판 직전까지 경영 현장을 누비며 의욕적으로 그룹의 100년사를 준비했다. 지난 5월 9조4000억원 규모의 이라크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따냈고 지난달 말엔 다시 이라크를 찾아 태양광과 정유·담수화 등 추가 수주를 논의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