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금융시장에선 ‘트리플 강세’라는 용어가 오랜만에 회자되고 있다. 트리플 강세란 주가와 채권가격, 통화 가치가 동시에 상승하는 시장 움직임을 말한다. ‘어렵다’는 말이 입에 밸 정도의 경제 여건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코스피지수는 작년 말 1825에서 지난 주말 1940선을 넘었다. 같은 기간 중 국채수익률(3년물)과 원·달러 환율은 각각 3.2%대에서 2.7%대, 1150원대에서 1130원대로 하락했다. 국채수익률과 원·달러 환율이 하락했다는 것은 채권가격과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치가 올랐다는 뜻이다.

한국 금융시장의 ‘트리플 강세’는 주로 외부 요인에서 비롯됐다. 금융위기로 유동성이 많이 풀렸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이 때문에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 경향(flight to quality)이 갈수록 뚜렷해지면서 국가별로는 선진국에선 미국, 신흥국 중에선 한국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에 들어온 글로벌 자금 규모를 보면 놀랍다. 올 들어 지금까지 국내 금융시장에 들어온 외국인 자금은 14조원에 달한다. 변수는 많지만 선진국의 유동성 공급 정책과 한국과의 금리차 등을 감안하면 외국인 자금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국내 금융시장에 유입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글로벌 자금이 빠른 속도로 유입되는 것은 한국에 대한 해외 시각이 좋기 때문이다. 초단기 해외지표에 해당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금리는 지난해 말에 비해 44bp 이상 떨어졌다. 같은 기간 중 외평채 가산금리는 2014년 만기물 기준으로 67bp 이상 하락, 중·장기 지표일수록 더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해외 시각이 개선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투자 관점에서는 ‘20-50클럽’에 속하게 된 것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50 클럽’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달러, 인구 5000만명을 넘는 국가를 말한다. ‘20K-50M’란 약어로 쓰기도 한다. 선진 7개국(G7) 가운데 캐나다도 이 기준에는 들지 못한다. 한국이 일곱 번째로 가입했다. 이 클럽에 속한 국가는 이후 10년간 성장세가 지속됐다.

한국 경제의 여건은 완전히 다르다. 지난 2분기 성장률은 2%대까지 떨어졌다. 잠재성장률이 3%대 후반인 점을 감안하면 GDP갭(실제성장률-잠재성장률)상으로 1%포인트 이상 ‘디플레이션 갭’이 발생했다. 경기선행과 동행·후행지표가 동시에 떨어지는 ‘트라이펙터(trifector) 현상’까지 나타나 전망도 불투명하다.

경제여건과 괴리된 금융변수의 ‘트리플 강세’는 ‘골드스타인 거품(Goldstein’s bubble)’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일단 ‘거품’에 대한 의심이 생겨나면 한국처럼 외환위기를 경험한 나라 입장에서는 위기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다. 중국 경기 둔화 등과 같은 특정 사건을 계기로 외자가 갑작스럽게 이탈할 경우 이 같은 위기설이 현실화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유입된 외자의 급속한 이탈에 따라 위기가 발생할 것인가를 검증하는 이론으로 잘 알려진 것이 모리슨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다. 이 지표대로라면 단기 투기성 자금의 이탈 여부는 △자산 인플레이션 정도 △유입된 외국자금의 건전도 등으로 예측해볼 수 있다. 이 중 유입된 외국자금의 건전도는 순직접투자와 경상수지 합계액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중·장기 위기진단지표는 대상국의 △해외자금 조달능력 △국내저축능력 등으로 평가한다. 특히 단기 위기진단지표가 악화될 경우 한국처럼 외환위기를 겪었거나 신흥국에 속하는 국가는 곧바로 해외자금 조달능력에 문제가 생긴다. 이 때문에 민간부문의 저축률과 재정수지로 표현되는 국내 저축능력을 더 중시한다.

이 지표를 활용해 최근 고개를 드는 위기설의 실제 가능성을 진단해 보면 대부분의 지표가 4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에 비해 개선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위기 가능성이 낮다고 하더라도 외국자금이 과다하게 들어오면 이탈(exodus)에 따른 위기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위기 경험국의 고질적인 ‘낙인효과(stigma effect)’다.

특정국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세 가지 단계를 꼭 거친다. 외환보유 등에 문제가 생기면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다. 한국처럼 담보 관행이 일반화된 국가에서는 시스템 위기로 비화된다. 시스템상 문제가 생기면 실물경제 위기로 치닫는 것이 위기를 맞은 국가들의 공통된 경험이다.

한국처럼 초기에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다 하더라도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되면 될수록 각종 착시현상으로 투기적 요인이 커지는 대신 위기 불감증은 심화된다는 점을 경제관료들은 알아야 한다. 우리 국민은 어렵고 위기감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외환위기 당시 경제 각료들이 주장했던 ‘펀더멘털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글로벌 자금이 많이 들어오면 올수록 다른 한편에서 제기되는 위기설을 근본적으로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정확한 현실 진단을 토대로 시스템 위기 극복 방안을 새로운 환경에 맞게 강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금 원천국과의 공조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