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미국 뉴멕시코주에 살던 81세의 스텔라 리벡 할머니는 손자가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아 있다가 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화상을 입었다. 다리 사이에 끼우고 있던 맥도날드 커피가 쏟아진 탓이다. 다리 등에 3도 화상을 입은 이 할머니는 소송을 냈다. 일반 커피 온도보다 훨씬 높은 82~88도의 ‘지나치게 뜨거운’ 커피 탓에 지난 10여년간 화상 사고가 700여건이나 있었지만, 맥도날드가 이를 알고도 같은 온도를 계속 고수한 탓에 화상을 입었다는 주장이었다. 배심원들은 할머니의 손을 들어주며 ‘맥도날드는 286만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중 16만달러는 치료비였지만, 나머지 270만달러는 처벌 성격의 손해배상금이었다.

이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징벌배상제)의 대표적인 사례다. 가해자에게 ‘고의나 그에 가까운 악의’가 있을 경우 그런 행위를 다시 못하도록 손해액과 관계없이 천문학적 배상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경제민주화 바람 속에 징벌배상제가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정치권이 지난해 논란 속에 도입된 징벌배상제의 대상을 공정거래 전 분야로 확대하겠다고 나서자 재계가 반발하고 있다.

현재 징벌배상제를 규정한 하도급법엔 ‘기술 유용 행위 금지 위반’에 대해서만 발생한 손해의 3배까지 배상토록 돼 있다. 대상 확대를 추진 중인 정치권은 현 제도가 대기업의 불법 행위를 막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을 예방하려면 징벌배상을 확대하는 게 효과적이란 주장이다.

대기업들은 징벌배상제가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반발하고 있다. 손해를 입힌 만큼 배상하는 게 시장원리인데 징벌배상제는 그 이상의 ‘분풀이’ 식 배상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성문법 체계인 한국 법체계에 맞지 않는 제도란 지적도 학계에서 나온다.

이상직 민주통합당 국회의원과 전삼현 숭실대 교수가 징벌배상제 확대 문제를 놓고 지상 논쟁을 벌였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