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의 국립수목원에 갈 때까지만 해도 백두산호랑이를 볼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폭염이 계속되는 8월 초의 어느 날, 숲길을 땀 흘리며 걸어보자는 벗의 제안에 나는 ‘이열치열’이라는 한자성어를 떠올렸다. 이른 점심을 먹은 6명은 손수건이 무거워질 정도로 이마와 목덜미의 땀을 닦으며 숲길을 몇 시간 걸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로 들어가는 공기가 신선하다 못해 달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다 보니 팻말이 보였다.

‘백두산호랑이.’ 맞아, 백두산호랑이가 광릉수목원에 있다고 했지. 보고 가자. 다리가 아파올 무렵 눈에 띈 팻말이 우리의 다리에 힘을 주었다.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다 보니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반달가슴곰이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인지 사람들이 가서 “반갑다 우리 조상” 운운하며 말을 걸어도 오불관언, 게슴츠레한 눈으로 우리를 보는 둥 마는 둥했다. 멧돼지가 보이자 일행 중 한 사람이 경기도 일대의 농작물 피해를 말해주었고, 우리는 죄 없는 우리 속의 멧돼지를 노려보았다.

백두산호랑이는 외따로 떨어진 곳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사육장이 외딴 곳에 있었고 달랑 한 마리만 고독을 씹고 있었다. 처음에는 우물 같은 곳에 몸을 담그고 있어 머리끝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호랑이를 못 보고 가는구나. 서운한 마음에 몇 번 소리쳐 불렀다. 백두산호랑이 씨 얼굴 좀 봅시다! 어이, 호형! 호랑이띠 동생이 왔어요.

한참 동안 소리를 질렀지만 햇살이 따가운 오후에 호랑이는 물 밖으로 나올 생각이 없는 듯했다. 각자 한두 마디씩 인사하고 몸을 돌리는 찰나 호랑이는 우물 밖으로 나왔다. 몸의 물을 푸르르 털어내더니 몇 차례 하품하는데 그 큰 입이 최소한 30㎝는 돼 보였다. 정말 멋지게 생긴 백두산호랑이었다. 우리를 위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모델 노릇도 한참 해주었다. 모두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었다.

자연다큐멘터리 제작자 박수용 씨가 20년 동안 백두산호랑이를 추적하고서 쓴 책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을 보면 지구상에는 다섯 종류의 호랑이가 있다고 한다. 시베리아호랑이, 벵골호랑이, 인도차이나호랑이, 수마트라호랑이, 남중국호랑이. 이 가운데 시베리아호랑이를 우리는 백두산호랑이 혹은 한국호랑이라고 부른다. 백두산호랑이들은 장백산맥을 타고 만주에서 백두산으로, 두만강을 넘어 우수리에서 함경산맥을 넘나들며 살았다고 한다. 내 눈앞 호랑이의 4대조, 그러니까 고조할아버지는 백두산 일대를 호령하고 다녔지만 지금 이 녀석은 장백산맥에도 백두산에도 가본 적이 없다. 지구상에 350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은 시베리아호랑이가 매년 수십 마리씩 죽어가고 있다니! 박수용 씨는 “가장 용맹하고 신성시되던 한 종족이 인간의 손에 의해 멸종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라고 쓰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광릉수목원의 호랑이가 혼자 살아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중국 방문 시 장쩌민 주석이 양국 간 우호증진을 위해 백두산호랑이 한 쌍을 기증했지만 10년이 지나는 동안 호랑이의 번식이 실패했고 한 마리는 죽었다. 남은 한 마리가 여기서 생의 말년을 외롭게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25년 안팎의 수명인데 한국에 온 지가 어언 18년이다.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시 중국 후진타오 주석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기증한 백두산호랑이 한 쌍은 지금 대전 오월드에 있다고 한다.

눈앞의 백두산호랑이는 호호할아버지인데도 위용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노익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쓸쓸하게 말년을 보내게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남쪽에 있는 후배를 만나게 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내년부터 60세 이상 노인 1인가구도 최대 70만원까지 근로장려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1인 가구와 노령층이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하고 저소득 근로자가구의 자립의지를 높이겠다는 의도다. 수목원의 독거노인 백두산호랑이에게도 신경을 좀 썼으면 좋겠다.

이승하 < 시인·중앙대 교수 shpoem@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