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기간을 이용해 1박2일 일정으로 고향집에 들렀다.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서 고추를 따고, 씻고 말리는 데 장장 6시간이 걸렸다. 땀이 비 오듯 했다. 피곤 때문에 돌아오는 열차에서 곯아떨어졌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손톱 밑이 갈라졌지만 마음만은 뿌듯했다. 남아 있는 고추를 팔순 노모께서 어떻게 정리할지 걱정이다.

연일 찜통더위가 계속된다. 불볕더위를 반기는 것은 고추밖에 없을 것 같다. 독거노인들이 가장 어렵다. 서민들이 지출해야 하는 에너지 비용도 늘어날 텐데, 전방에 있는 병사들은 적뿐만 아니라 무더위와도 싸워야 하니 얼마나 힘들까 걱정이다. 더운 지역에서는 왜 게으른지를 이해하게 됐다. 불공정 불공평은 인간사회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자연에도 있는 것 같다. 적도 위아래 1000마일 이내에는 선진국이 하나도 없다. 뙤약볕에서 그들이 생산하는 커피열매가 없다면 우리가 과연 즐길 수 있을까? 그들이라고 해서 산업화를 갈망하지 않았을까? 기후에 대항해 산업화를 추구해서 성공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기후가 국가의 부와 빈곤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후변화 ‘대응’이란 말에 익숙해졌다. 이렇게 매년 찜통더위가 계속된다면 ‘대응’보다도 ‘적응’이 더 시급한 것 같다. 정부 내에서도 기후변화 대응은 기상청이나 환경부, 지식경제부가 담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기후변화가 이렇게 급속히 진행된다면 분야별로 모든 부처가 담당해도 쉽사리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우리 방위사업청도 무기체계의 내열안정성이나 냉난방 기준을 재정비해야 한다. 이에 소요되는 막대한 투자비용을 어떻게 감당할지는 또 다른 과제다. 다만 대규모 투자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이런 기후변화가 일시적 현상인지, 구조적 변화인지에 대한 과학적 검증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기온상승을 오직 땀이라는 증발작용을 통해서 해결한다면 그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 동물은 이동을 통해서 적응을 한다. 인간은 정착생활을 하기 때문에 냉방시설을 이용할 것이다. 그렇지만 식물은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적응해야 한다. 식물이 견딜 수 있는 한계는 섭씨 2도까지의 기온상승이라고 한다. 산업혁명 이후 이미 섭씨 0.7도가 상승했다고 하니 여유가 별로 없다. 식물생태계가 변했는데 인간은 과연 냉난방에 의지해서 그 자리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간단치 않은 문제다.

작년보다 고추 수확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무더위 때문에 일만 더 고됨을 알았다. 일은 고된데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고추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할 것이다. 저가 수입고추가 확산되지 않을지 걱정된다. 그렇더라도 농약을 치지 않은 고향산 태양초는 계속될 것이다. 적어도 부모님이 고향에 살아 계시는 동안까지는 말이다.

노대래 < 방위사업청장 dlnoh@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