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거리에서 9척 장신의 노신사가 어린 소녀 앞에 무릎 꿇은 모습을 보았다. 할아버지와 손녀로 보였는데 먹던 아이스크림이 통 밖으로 흘러나와 손에 묻은 것을 노신사가 무릎을 꿇고 손수건으로 깨끗이 닦아 다시 쥐어주는 모습이었다. 어린 손녀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할아버지의 지극한 낮춤 모습은 뿌듯한 감동이었다.

청년 일자리 사정이 말도 못할 지경으로 악화됐다. 대학 교육의 정점으로 평가되는 서울대 박사학위 취득자 중 30%는 일자리가 없다고 한다. 청년 일자리 문제만 나오면 어김없이 ‘눈높이 타령’이 등장한다. 중소기업에는 일자리가 많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현장의 열악한 작업환경을 정부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청년의 최저 눈높이에 맞춰 개선해야 한다.

작년 말부터 정부의 강력한 지원에 따라 고졸 취업 붐이 조성되고 있다. 대학 졸업장과 공인 영어점수 등 취업 스펙을 갖추고 장기간 준비해온 청년들이 한 방 맞았다. 어린 10대의 일자리 경쟁 상대는 병역을 마친 남성의 경우 20대 후반이다. 이들의 처진 어깨와 분노도 생각해야 한다. 공부 좋아하는 사람이 매우 드문 현실에서 고졸 취업을 띄우면 학문 기피에 따른 학력 저하로 현대판 분서갱유(焚書坑儒)가 될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와 일부 보수 언론의 호들갑과는 달리 고졸 우대에 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야권의 복심도 살펴야 한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요즘 여야의 대선용 선심성 공약 리스트에서도 ‘청년 일자리’는 밀려나 있다. 야권은 ‘따 놓은 당상’, 여권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치부해 청년 문제는 제쳐 둔 느낌이다.

기득권 사수에 혈안인 강성 노조와 직접 고용 최소화를 바라는 기업주의 이기심이 청년 일자리를 가로막는 장애다. 역대 정부가 강성 노조에 끌려 다닌 결과 수많은 청년들이 만년 인턴 또는 사내하청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정치권의 계속되는 대기업 때리기는 기업의 ‘최소 인원 안정경영’을 고착시켜 결국은 일자리에 해독이 됐을 뿐이다.

그동안 야권이 주도했던 순환출자 해소와 금산분리 문제를 여권이 낚아챘다. 대표적 순환출자 회사인 삼성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은 주가와 수익성이 제일 높고, 투자 규모도 제일 크고, 매물로 나온 기업 인수실적도 가장 많다. 순환출자에 참여한 주주는 주가상승으로 이익을 얻었고 특별히 손해 입었다는 이해관계자도 없는데 정치권이 왜 나서는지 알 수 없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순환출자와 금산분리 문제를 주도했던 심상정 의원은 18대를 원외에서 보내고 19대 국회에 복귀하면서 환경노동위원회를 자원해 노동현장에 집중하고 있다. 현역의원 시절에는 지배구조에 특별한 역할이 없었던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원외에서 갑자기 순환출자 버스터(buster)로 변신한 것도 의아스럽다. 새누리당의 순환출자 야단법석을 말 없이 지켜보는 야권의 관전 포인트도 궁금하다.

가장 단순한 순환출자 해소방법은 고리의 마지막 계열사 보유주식을 발행회사가 자사주로 매입하는 것이다. 에버랜드의 경우 삼성카드가 보유한 주식을, 현대중공업의 경우는 미포조선이 보유한 주식을 자사주로 매입하면 끝난다. 현대차도 여러 갈래 순환출자의 마지막 고리를 현대차 자사주 매입으로 해소하면 된다. 순환출자 해소에 자금력을 동원하면 가용재원 고갈로 투자여력이 줄어들고 신규고용도 위축된다. 민영화 대상인 우리금융 대우조선 금융공기업 등의 매수세가 사라지고 정치권 휘하의 낙하산 자리는 그대로 남는다.

정치권은 공허한 지배구조 논쟁을 접고 청년 일자리를 위해 무릎 꿇은 자세로 청년에 다가가야 한다. 법인세를 더 걷어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 생각은 버려야 한다. 생애 최초 직장에 한해서 고용한 기업에 대해 급여 절반 수준의 법인세를 감면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기업주도 청년 직원들을 자주 만나 그들의 젊음과 꿈을 나누면서 ‘고용하는 기쁨’을 만끽해야 한다. 기업주별로 고용실적을 공정하게 산정해 이를 가장 중요한 국가 사회에 대한 공헌으로 드높여야 한다. 청년에게 일자리로 희망을 주는 기업가가 넘치는 대한민국을 정착시켜야 한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 객원논설위원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