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관측장비 납품 비리 의혹을 놓고 기상청과 두 민간기상업체 간 진실 공방이 뜨겁다. 경찰은 조석준 기상청장이 지난해 기상장비 납품업체 선정 과정에서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올초부터 수사를 진행해왔다. 기상청장까지 수사선상에 오른 이번 사건의 이면엔 국내 1, 2위를 다투는 민간기상업체 간 진흙탕 싸움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비리 의혹 받는 기상청장

이번 사건의 핵심은 지난해 실시된 총 72억원 규모 라이다 2대 입찰 과정에서 기상청이 특정 업체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다. 라이다는 적외선을 이용해 맑은 날 발생하는 순간돌풍을 잡아낸 뒤 공항 관제시설에 경고하는 장비다. 당시 입찰엔 국내 민간기상업체 선두주자인 K사와 W사가 참여했다.

기상청의 장비 구매 위임을 받은 기상산업진흥원은 지난해 9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평가를 실시했다. 이 결과 W사가 모두 적격 판정을 받은 데 비해 K사는 모두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진흥원은 이 같은 심사 결과를 조달청에 통보했으나 조달청은 단독 응찰을 이유로 유찰시켰다. 조달청이 지난해 12월 낸 입찰 재공고에선 두 곳 모두 적격 판정을 받았고, 가격을 낮게 써낸 K사가 최종 낙찰자로 결정됐다. 두 차례 평가에서 떨어진 업체가 3차 평가에서 최종 합격한 것에 기상청 윗선의 개입이 있었다는 게 W사의 주장이다.

W사는 또 당초 제품규격을 기상청이 의도적으로 변경했다고 주장한다. 기상청은 지난해 입찰에 착수하기 전 해당 장비의 최대 탐지반경 규격을 종전 15㎞에서 10㎞로 완화했다. K사가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K사 제품 규격에 맞게 낮췄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이 같은 사실이 국무총리실에 제보되면서 경찰이 올초부터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 6일 진흥원 고위 간부를 소환조사했다. 조 청장도 수사선상에 있다.

◆업체 간 엇갈린 진실 공방

K사는 “앞서 두 차례 평가에서 떨어진 건 진흥원이 오히려 W사에 특혜를 준 것”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평가에서 W사에 고의적으로 유리한 평가를 내린 진흥원의 박모 팀장이 파면 조치됐다. K사 고위 관계자는 “입찰에서 떨어진 W사와 파면된 박모 팀장이 앙심을 품고 국무총리실과 경찰 등에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제품규격 완화 논란에 대해선 “(기상청이) 국내 현실에 맞춰 제품규격을 조정한 것일 뿐 우리는 전혀 로비를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K사는 최근 W사와 진흥원 전 간부를 입찰방해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이에 대해 W사 측은 “K사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경찰 수사 과정에 모든 비리 의혹이 밝혀질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번 사건은 민간 기상산업 시장 주도권을 놓고 K사와 W사가 벌이는 싸움이라는 지적이 많다. 매출 규모에서 1위를 달리는 K사와 이를 바짝 뒤쫓는 W사가 벌이는 선두다툼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건의 진실은 경찰의 수사에서 드러나겠지만 연간 1000억원 규모에도 못 미치는 민간 기상산업 시장에서 두 선두업체가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건 국내 기상산업의 손해로 직결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