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표 새누리당 의원을 소환조사할 예정입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보고 받지 못했습니다.” “보고를 못 받았다는 뜻인가요.” “네.” “현직 여당 의원을 수사 중인데 정말 보고를 못 받았습니까.”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으로 누구를, 어떻게 (조사)할지 말하기 어렵습니다.”

김기용 경찰청장이 8일 경찰청사에서 가진 취임 100일 간담회에서 기자들과 주고받은 말이다. 홍 의원은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시절 저수지 준설사업 허가를 두고 뒷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여당의 재선 의원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최근 불법 로비스트 A씨를 조사하면서 ‘로비 자금’이 홍 의원 측에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하고 소환조사키로 했다. 그런데도 김 청장은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기자들이 거듭 추궁하자 마지못해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앞서 지난달 9일 기자간담회에서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주한미군 헌병들이 민간인들을 수갑 채운 채 불법연행해 파문이 일었지만 김 청장은 “미군이 한국인을 끌고 간다고 해서 무조건 불법이라고 판단할 상황은 아니었다. (연행되던 민간인이) 미 군속이었다면 적법한 것 아니냐”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주한 미군사령관은 왜 공식 사과를 했을까.

김 청장은 수원 여성 피살사건의 부실·은폐수사와 잇따른 일선 경찰의 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조현오 청장 후임으로 지난 5월 취임했다. 저돌적인 공격수 성향인 조 전 청장이 수면 위로 끌어올렸던 각종 현안은 차분한 수비수 성향인 김 청장이 취임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당장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부터 쑥 들어갔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재산을 지키는 국가공권력의 최일선에 서 있다. 학교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 빈번해지는 외국인 범죄에다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여성·아동 대상 성폭력, 최근 안산 SJM 경비용역 폭력사태와 같은 노동현장 갈등의 1차적 해결은 경찰 몫이다.

경찰의 수장이 단순히 ‘차분한 관리형’이나 ‘소극적인 행정가형’으로만 그친다면 국민의 불안이 그만큼 커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수뇌부가 지나치게 답답한 행보를 보여서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김선주 지식사회부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