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학선은 여의치 못한 집안 환경과 술을 지독히 즐기던 아버지 밑에서 홀로 컸다. 체조를 먼저 시작한 형을 따라 광주 광천초 3학년 때 체조에 입문했고 광주체중에 진학해 오상봉 당시 감독(현 광주체고 감독)의 권유로 도마를 하게 됐다.

그는 159㎝란 작은 키를 극복하기 위해 남다른 점프력으로 수만번 도마 위를 날았다. 혹독한 훈련으로 기량이 쑥쑥 늘면서 광주체중 3학년이던 2007년 전국종별대회에서 3관왕에 올랐다. 광주체고 입학 첫해인 2008년에는 전국체전에서 개인종합, 단체전, 도마 등 3관왕을 이룩했다.

그러다 체조협회가 2012년 런던올림픽을 겨냥해 금메달 전략 종목을 평행봉에서 도마로 바꾸면서 양학선이 곧바로 태극마크를 달게 됐다. 평행봉 규칙이 바뀌면서 금메달을 따기가 더욱 어렵게 되자 체조인들은 짧은 기간 승부를 걸어볼 만한 도마로 전략을 수정했다. 한국 체조는 도마에서 두 번이나 은메달을 땄지만 착지 때 발목 부상에 대한 위험이 커지면서 이 종목을 포기하는 선수가 많았다.

그러나 양학선은 7.0점짜리 고난도 기술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선수였다. 전문적인 지도와 관리 속에 2010년 아시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펼치며 도마와 링 종목을 제패했다. 그해 10월 생애 처음 참가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도마 4위에 올랐고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첫 금메달을 안았다.

양학선은 한국체대에 진학한 2011년, 광주체고 21년 선배인 여홍철(경희대 교수)의 전매특허 기술인 ‘여2’를 한 단계 발전시켜 공중에서 세 바퀴를 비트는 신기술을 창조했다. 이 기술은 코리아컵 국제체조대회를 통해 이 종목 최고난도인 7.4점으로 인정받았고,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그를 정상으로 이끌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