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드라기 쇼크'로 3일 연속 1840선까지 빠졌던 코스피지수가 단 하루 만에 2% 이상 뛰어올라 장중 1890선을 단숨에 회복했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액션 없는' 경기부양책에 대한 시장의 긍정적인 재해석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대표 위기국가인 스페인은 물론, ECB의 대부분 경기부양 결정에 반대해온 독일의 입장 변화가 가능할 것이란 분석이 잇따르면서 국채 매입 프로그램(SMP) 재개 방안 등이 구체화될 것으로 시장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도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3차 양적완화(QE3)를 실시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코스피지수는 지난주 사실상 '무대책'으로 지적된 드라기 ECB 총재의 발언 이후 1880선에서 사흘 만에 1840선으로 40포인트 이상 주저앉았다.

드라기 총재는 ECB 8월 통화정책회의(2일) 전 이미 유로존 위기 해결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예고했었다. 하지만 국채매입, 금리인하, 장기대출프로그램(LTRO) 등 시장이 기대한 정책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수 주일 안에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겠다'는 드라기 총재의 '립서비스'가 이어졌을 뿐이다.

지난주말 유럽 증시가 반등에 성공했다. 물론 당초 예상치를 뛰어넘은 미국 고용지표의 영향도 있었지만, 드라기 발언에 대한 시장의 재해석 및 독일의 반대 입장� 관련한 역학 관계의 변화가 관찰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이다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이 지금까지 유로존의 '먹구름'에만 집중하던 것에서 조금씩 보이는 '실버 라이닝(먹구름 뒤 해가 비출 때 생기는 구름의 은빛 테두리'을 보기 시작했다"며 "다시 말해 시장 분위기가 ECB의 액션이 이뤄질 수 있다는데 초점이 옮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드라기의 발언이 긍정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독일 내부의 강경한 반대 입장에도 불구하고, 드라기의 결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변 환경의 변화는 과연 무엇일까.

이 연구원은 "스페인의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기존의 구제금융 가능성을 부인하던 태도에서 ECB의 국채매입에 대한 계획을 검토하고 구제기금에 이를 요청할 수 있다고 돌아섰다"며 "게다가 메르켈이 소속된 기독민주당(CDU)의 엘마르 브로크 집행위원마저 'ECB의 국채매입은 위기해결로 가는 현명한 중도'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CB 정책위원회에서 분데스방크 총재 바이드만과 지금까지 같은 편에 서왔던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핀란드 등의 정책위원들도 최근 입장에서 돌아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연구원은 "결론적으로 드라기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국채 매입을 할 것'이라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 있으며, 구체적인 계획을 확정해 9월 유로안정화기구(ESM)이 출범하면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라고 전망했다.

8월 ECB에 대한 시장의 실망은 단기에 마무리될 수 있다고 예고한 전문가들도 상당수였다.

이상재 현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단기적으로 드라기 기대가 무산되면서 시장 내 실망감이 급격히 확산될 수 있지만, 유로존 위기가 다시 확산될 경우 ECB가 행동에 나설 명분이 오히려 더 강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드라기 총재가 직접 밝혔듯이 유로존 체제 위협이 극대화될 경우 ECB가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여전히 있으며, 유로존 위기에 대한 근본적 해법은 9월 양대 이벤트(Fed의 FOMC, ECB 통화정책회의)를 계기로 4분기 중 진전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내다봤다.

이 이코노미스트는 "향후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유로존 위기국과 관련해 결국 유로존 정책당국 간 최종 해법을 구축해 낼 것"이라며 "4분기 중 독일과 프랑스 간 재정통합과 재정분담 간 빅딜을 통해 구체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9월 12일 독일 헌재의 유로안정화기구(ESM) 위헌소송과 30일 프랑스 의회의 신재정협약 표결 이벤트가 무난히 마무리되면 유로존 로드 맵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경기부양에 대한 기대도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김두언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지난주 Fed와 ECB의 사실상 '무대책'으로 마무리된 경기부양에 대한 기대는 이달 말로 예정돼 있는 잭슨홀 연설로 이연될 수 있을 것"이라며 "나아가 ECB의 국채 매입 프로그램의 시행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지난 7월 비농업 취업자 수가 당초 예상치(10만명 증가)을 크게 웃도는 16만3000명으로 집계됐지만, 실업률은 전월의 8.2%보다 소폭 상승한 8.3%를 기록했다는 것. 이는 고용 성장세가 실업률을 낮출 만큼 충분하지 못한 데 따른 것으로, QE3의 여지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임노중 솔로몬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7월 비농업부문의 신규고용은 예상치를 웃돌았지만, 농업부문을 포함한 전체 취업자수는 19만5000명 줄었다"며 "이로 인해 경제활동인구는 15만명 준 반면 실업자수는 4만5000명, 비경제활동인구는 34만8000명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전체 고용지표는 여전히 취약하다"면서 "더욱이 단기에 유로존 재정위기가 안정을 되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미국 고용의 선행지표들도 고용회복을 뚜렷하게 시사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7월 고용지표가 예상치를 웃돌았지만, 향후 고용회복이 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Fed의 QE3에 대한 여지는 남아있다"고 말했다.

특히 2010년 11월에 Fed가 6000억 달러의 2차 양적완화를 시행했던 것은 6∼9월까지 4개월 연속으로 신규고용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것. 앞으로 1분기 정도 미국의 신규고용이 준다면 QE3 실시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