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전경린 씨(50)가 《최소한의 사랑》(웅진지식하우스)을 펴냈다.

연애소설을 잘 쓰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고, 제목도 그렇게 보이지만 남녀 간의 뻔한 사랑 얘기는 아니다.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지 않는 무책임함에서 오는 개인의 외로움과 고독, 그걸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이야기가 스며 있는 삶에 대한 통찰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전씨는 소설 속 인물의 입을 빌려 “난마처럼 얽히는 이 많은 고통과 상처가 실은, 가장 최소한의 것을 지키지 못해 생기거든요. 자신 속에서도 그렇고, 사람과 사이에서도 그렇고”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희수는 오빠와 함께 유란을 길에 버린다. 엄마의 부재를 확인해준 새엄마와 그의 딸에 대한 적의에서다. 며칠 뒤 유란을 찾기는 하지만 이미 깊게 패인 상처로 인해 다시 함께 살 수는 없다. 결국 유란은 엄마와 생이별을 한 뒤로 만나지 못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희수는 다른 여자를 만나는 남편과, 호주로 떠나버린 외동딸을 둔 여인이 된다. 그는 치매를 앓다 죽은 새엄마의 유언을 지키려 한다. “제발 유란이 좀 찾아다오.” 유란은 북쪽 접경도시에 살다가 집을 비운 상태였다. 희수는 유란의 행방을 쫓으며 유란 주변의 사람들을 만난다. 얼어붙은 겨울, 북쪽의 도시로 찾아온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전씨는 물기 없는 담담한 단문으로 인간, 특히 여성의 상처를 드러내 보인다. 가족에게, 남자에게, 그 밖의 삶에서 찢기고 패인 상처가 깊다. 하지만 그 또한 아주 느리게, 눈치채기 힘든 속도로 아물어간다. 인물들은 약해 보이지만 한발 한발 나아간다. 사랑하면 죽어버리는 병에 걸린 유란 또한 외려 사랑을 향해 다가선다.

전씨는 “나는 공간에서 영감을 받는 사람”이라며 “몇 년간 살았던 접경도시에서, 인간을 살게 하는 것은 최대한이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적인 것들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인간을 존엄하게 하는 건 최대가 아닌 용기, 친절, 관용과 같은 최소한의 가치라는 얘기다.

소설의 결말은 상처받은 여성들의 해빙(解氷) 같은 화해와 연대다. 요란한 소리 없이 물이 되어 하나되는 그런 결합이다. ‘최소한의 것’을 필사적으로 지켜낸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삶이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