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루트' 로 악용된 국제우편…美기지·어학원 소포 '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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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드 - 경찰팀 리포트]
최근 인터넷거래 늘면서 불법물품 반입 해마다 급증
마약·총기에 문화재까지…단속 헐거운 우편물로 오가
인천공항 탐지견 두 마리, 하루 3만통 편지 검사
최근 인터넷거래 늘면서 불법물품 반입 해마다 급증
마약·총기에 문화재까지…단속 헐거운 우편물로 오가
인천공항 탐지견 두 마리, 하루 3만통 편지 검사
“기이이잉….” 지난 26일 오후 1시20분 인천국제공항 화물청사 국제우편물류센터. 비행기 계류장과 연결된 1번 캐러셀(수하물 컨베이어벨트)이 육중한 기계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체국 직원 20여명은 익숙한 솜씨로 일본 도쿄를 출발, 이날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한 대한항공 853편에 실려온 국제 우편물을 캐러셀 위로 옮겨 실었다. 캐러셀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대기하던 인천공항세관 직원 10여명도 함께 분주해졌다. 지난 19일 현역 주한미군 미8군 2사단 소속 A이병(22)이 전·현직 미군 장병들과 짜고 역대 최대 분량(3480g)의 마약을 국내 반입하려다 적발된 후 주한미군의 군사 우편물 등에 대한 세관 검사를 강화하라는 보고를 받은 터였다.
X선 검색요원들은 우편물의 전방과 양측면을 보여주는 3개의 모니터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X선 검색요원은 대부분 경력 10~20년의 베테랑들이다. 책 속에 꽂혀 있는 위조지폐나 여러 개 조각으로 분해된 총기 등의 윤곽만 봐도 구분할 수 있다. 현장에 투입된 폭발물·마약 탐지견 2마리도 캐러셀 위를 오가며 연신 코를 ‘킁킁’거렸다. 박동욱 인천공항세관 검사관은 “해외에서 오는 모든 우편물을 확인하는 게 원칙이지만 시간이 너무 걸리기 때문에 X선 검색을 거친 뒤 이상이 있는 경우만 정밀 검색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인터넷 전자상거래 발달로 해외에서 신종마약이나 불법총기류, 심지어 국보급 보물까지 국제우편·특송화물을 통해 밀반입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100달러 이하의 특송화물과 우편물의 경우 통관절차가 까다롭지 않다는 허점을 노린 세력들이 마약, 총기류 등 사회안전을 해치는 위해물품을 주고받는 루트로 악용하고 있다.
인천공항 국제우편세관 등 전국 수출입 물품이 통과하는 47개 세관은 국제 우편물과 특송화물의 검문·검색이 이뤄지는 ‘처음이자 마지막 관문’이다. 여기서 불법물품이 걸러지지 않으면 우편물은 우체국이나 택배회사에 넘겨져 전국 각지에 아무런 제재 없이 배달된다. 세관이 국내로 들어오는 사회안전을 해치는 물품을 걸러낼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관세청도 이 같은 심각성을 인식하고 검사 인원을 늘리고 새로운 장비를 도입하는 등 노력은 기울이고 있지만 특송화물과 우편물을 통한 불법물품의 반입은 오히려 증가세다. 지난해 적발된 건수(마약 총기류 위조문서)는 279건으로 2009년 246건보다 13% 늘어났다.
◆29조원 美위조채권…X선 검사 않는 서류로 반입
국제 우편을 통해 반입되는 불법물품 가운데 세관에 가장 많이 적발되는 품목은 마약류다. 지난 한 해 국제우편·특송화물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마약류는 총 1만2521g. 최소 4만1730명이 동시에 투입할 수 있는 양이다. 2010년 적발된 8175g보다 53%가량 늘었다. 최근엔 중국은 물론 헝가리나 영국, 뉴질랜드 등으로 반입루트가 다양해지고 있다. 수법도 정교해진다. 족욕기 밑, 오토바이 헬멧 속, 심지어 휴대폰 충전기 안에도 필로폰을 숨겨 들여왔다.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총기류도 국제우편·특송화물로 포장돼 국내로 들어온다. 지난 2월 손모씨(39) 등은 영국 총기판매 사이트 등에서 구입한 총기 부품을 세관 추적을 피하기 위해 총열과 다른 부품을 분리해 배송하는 수법으로 국내에 들여와 조립한 뒤 1정당 20만~120만원을 받고 17명에게 판매했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총기류 외에도 전기충격기, 가스분사기, 공기총, 석궁 등의 반입도 늘고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전자상거래 발달로 모의 총포류와 조준경 등의 밀반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위조서류도 국제우편·특송화물을 통해 배송된다. 주로 중국에서 반입된 위조서류는 위조인장, 운전면허증, 주민증록증, 여권, 학생증·졸업증명서 등 종류도 다양하다. 지난 4월에는 국제특송화물 등으로 위장해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고서적 3486점을 중국에 밀반출을 시도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인천공항 국제우편물류센터는 X선을 투과해 색상 차이(현대서적은 짙은 밤색, 고서적은 주황색)로 서적류를 검사하지만 유모씨는 고서적 2~3권을 신문지로 포장해 일반 서적 사이에 끼워 넣은 뒤 소포용 박스에 담는 식으로 검색대를 통과했다.
2010년 12월 필리핀에서 온 한 특송화물엔 위조 미국채권·은행보증서 등 액면가로 29조원 상당의 위조 서류가 들어 있었다. 편지나 서류 등의 서신은 X선 검사를 따로 받지 않고 탐지견이 마약의 유무 정도만 판단하는 탓에 이를 감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100달러 이하 특송…업체가 자체 검색
국제우편·특송화물을 통한 밀반입이 늘어나는 건 특송·우편물의 수입통관절차가 간소한 점이 악용되고 있어서다. 국제우편·특송화물의 경우 물품의 긴급성과 수취인의 편의성을 고려해 세관에서 신속하게 통과한다. 국제우편은 우체국이, 특송화물은 CJ GLS, 한진, 현대로지스틱스, FedEx, TNT, DHL 등 특송업체가 취급한다.
관세법에 따르면 특송화물의 경우 미화 100달러 이하(미국발 화물은 미화 200달러 이하) 소액 물품(의약품 건강기능식품 등은 제외)은 정식 수입절차를 생략하고, 특송업체가 품명·가격·수취인 등 반입 물품 내역을 간단하게 기재한 ‘통관 목록’만을 제출받고 있다. 국제우편의 경우 과세대상 품목에 한해서만 우체국이 품명·발송인·수취인 등의 목록을 따로 만들어 세관에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특송업체가 반입 물품의 내역을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을 경우 밀반입을 막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 소고기 육포를 반입하면서 통관 목록에 코트(coat)로 기재해 신고하는 식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최근 특송화물량 증가세에 비해 특송업체의 불법물품 자체 검사 기능 및 통관 목록 신고 정확도는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관세청은 통관 목록을 정확히 기재해 제출하는 업체엔 목록 통관 비율 확대, 과태료 감면율 상향 조정 등의 혜택을 부여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업체에 대해선 정식 수입신고 비율 확대 등의 조치를 취해 특송업체 스스로 불법물품에 대한 자체검사 능력을 향상토록 유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해외 특송업체 관계자는 “100달러 이하 물품이라고 해도 어떤 물품이 들어왔는지 100% 자체 검사를 통해 목록을 작성, 세관에 제출하고 있다”며 “대형 특송업체는 발송인·수취인이 기업인이 많기 때문에 불법물품을 반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하루 편지 3만통…탐지견은 두 마리뿐
물품을 쉽게 사고 중간 공급책을 거치지 않는 인터넷 거래가 늘어나면서 국제 우편물·특송을 통한 밀반입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관세청 등 단속 당국은 속수무책이다. 무엇보다도 이를 단속할 인력이 부족하다. 인천공항 화물청사 내에서 가장 많은 국제 우편이 오가는 국제우편물류센터에는 세관직원 20여명이 2교대로 매일 6000여개의 소포를 검사한다. 3만여통의 편지에 마약이나 폭발물이 있는지 검사하는 탐지견은 2마리가 맡는다. 탐지견은 후각이 금방 무뎌지기 때문에 하루에 4시간만 현장에 투입된다.
김대근 인천공항세관 마약조사과장은 “새로운 합성 대마가 생길 때마다 탐지견이 이를 감지하도록 훈련시키고 검사관도 공부를 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 강력범죄수사과 마약계 관계자도 “최근 특송화물을 통해 마약을 숨겨 들어오는 사건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핸드백 등에 1~2g 정도의 마약을 숨겨서 들여오면 적발이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김우섭/하헌형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