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공약대로 실천하면 한국 경제는 망할 것 같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이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 움직임에 대해 정면 비판했다. 성장률이 3% 밑으로 떨어져 장기 성장동력 확충을 고민해야 할 때 정치권이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 빠져 경제에 부정적 영향만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대표적 경제학자가 정치권의 반발을 각오하고 경제민주화가 불러올 폐해를 경고하고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 총장은 26일 제주 해비치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하계포럼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치권의 경제민주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양극화를 해소하고 형평성을 개선한다는 것 같은데, 기업들이 생존력을 키울 수 있는 생태계와 반대로 가게 된다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대기업들이 불공정 거래를 하거나 위법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선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대기업은 해외에서 다른 기업과 경쟁하기 때문에 규제할 땐 글로벌 스탠더드를 생각해야지, 일시적 포퓰리즘이나 국민정서에 좌우되면 기업 경쟁력에 치명적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동력 역할을 해온 대기업을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순환출자 해소 등 한국만의 규제로 옥죌 경우 대기업뿐 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얘기다. 전경련에 따르면 출총제와 같은 사전적 규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없다.

정 총장은 정치권의 행태를 대선을 앞둔 포퓰리즘으로 규정했다. 그는 “선거를 앞두고 경제가 정치화되는 분위기”라며 “좋은 정책은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인데, 지금 정부나 정치권이 (그런) 생태계를 만들어주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또 “국민들이 공약을 믿어야 하는데 다들 ‘선거가 끝나면 실행이 안되겠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거용 공약의 허상을 질타한 쓴소리다.

정 총장은 한국 경제 전망에 대해 “당분간 성장률이 3% 안팎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며 “장기 성장 기반 확충 등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 정치권은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금융위기 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멀리 보고 교육 부문에 가장 많은 투자를 했다”며 “일시적 경기부양책은 효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인구가 줄어들고 세계 경제구조가 변화하는 지금의 환경 속에서는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값 등록금 등 ‘무상복지 시리즈’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그는 “공정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시장논리와 반대로 갈 때가 많고 무상이나 복지를 강조하면 장기 재정 건전성에 어려움이 생기게 마련”이라며 “이런 문제점은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보여주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정 총장은 간담회 직후 이어진 ‘경기침체, 어떻게 대응하나’란 제목의 포럼 강연에서 “앞으로 불황은 한두 번 있는 게 아니라 일상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8년 금융위기를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이 함께 돈을 찍어내고 정부 지출을 늘려 막았는데, 이제 그 부작용이 나타난 데다 별다른 처방이 없어 빠른 회복이 어려울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한국 경제는 당분간 2~3% 성장하는 데는 어렵지 않겠지만 10년 뒤엔 대학 입학 인구가 지금의 3분의 2로 감소할 정도로 인구 구조가 급격히 바뀌고 있어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총장은 전주고, 연세대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연세대 교무처장을 지냈으며 지난해 12월 연세대 교수평의회가 주관한 투표에서 86.6%의 지지를 얻어 총장에 선임됐다. ‘위기의 경제학’ 등 경제학 서적을 일곱 권 펴냈다.

제주=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