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러시아. 눈이 많은 이 나라에서 완성차 업계가 큰 걱정거리를 떠안게 됐다. 제설제인 염화칼슘 등이 운행 중인 차량에 달라붙으면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부동액 탱크가 부식되는 사고가 발생한 탓이다. 완성차를 더 가볍게 만들기 위해 탱크 소재를 금속에서 플라스틱으로 바꾼 직후였다. 부랴부랴 용역을 의뢰 받은 듀폰을 비롯한 글로벌 화학 기업들이 매달렸지만 무위였다. 이때 매출 200억원에 불과한 국내 중소기업이 해법을 들고 나타나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코프라(사장 한상용·44)가 주인공이다.

한상용 사장은 “자동차용 고기능성 폴리머(polymer)가 ‘캐시카우’로 자리잡았다”며 “자동차 경량화가 진행될수록 우리 회사의 존재감은 더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1997년 설립된 코프라는 고기능성 폴리머 전문 기업이다.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머는 금속처럼 강도가 세지만 무게는 훨씬 가벼워 금속을 빠르게 대체해 나가고 있다. 국내 자동차용 시장은 2007년 3000억원에서 2011년 6000억원으로 두 배로 성장한 데 이어 올해는 1조원 규모를 형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EP, 호남석유화학, 코오롱플라스틱 등 대기업 관계사를 제외하면 코프라가 유일한 중소기업이다.

시장이 커지는 것은 고기능성 폴리머를 쓸수록 자동차가 가벼워지고 그 결과 연비가 개선되기 때문이다. 한 사장은 “현재 자동차에서 폴리머 소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적으로 15~18%에 머물러 있어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며 “폴리머 비중이 10% 늘어나면 연비도 10% 가까이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대량 생산을 통해 원가절감이 가능하고 디자인 자유도를 높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이를 통해 코프라는 5년여 만에 한라공조와 두원공조를 비롯한 250여개 고객사를 확보했다. 특히 이 회사는 가장 높은 신뢰성을 요구하는 엔진 관련 부품에 특화돼 있다. 덕분에 매출은 2009년 469억원, 2010년 682억원, 2011년 841억원 등 가파른 성장세다. 올해 목표는 1050억원.

실적 개선의 일등공신은 ‘장섬유 강화복합소재’(LFRT)다. 단섬유보다 강도가 두 배 높은 장섬유를 활용한 신기술로만 올해 200억원 매출이 가능하다고 한 사장은 강조했다. LFRT 기술은 현대·기아차 신형 아반떼 14곳을 비롯해 에쿠스와 K9 등 대형 세단에 최근 본격 적용되기 시작했다. 고객사와 신규 개발 중인 부품도 40여종에 달한다. 우주 항공 등 특수 분야에서 태동한 기술이 자동차 시장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

한 사장은 “한국 자동차 산업이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를 넘어 퍼스트 무버(시장 선도자)가 되려면 소재 경쟁력이 선행돼야 한다”며 “100년 장수하는 소재 기업을 육성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화성=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